[사설] 국회 품격 망각한 야 대통령 시정연설 보이콧
향후 예산안 심사 난항 예고
정쟁 도구로 삼아서는 안 돼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3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 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kimjh@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했다.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지난 5월 추가경정예산안 연설에 이어 두 번째다. 이날 윤 대통령은 고물가, 고금리, 달러 강세로 더욱 커진 경제적 불확실성을 언급하면서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조했다. 글로벌 복합 위기 앞에서 당장 생사의 벼랑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 지원에 예산과 정책의 중점을 두겠다는 발상은 바람직한 것이다. ‘약자’라는 낱말이 일곱 차례, ‘경제’라는 말이 열세 차례 나온 데서도 알 수 있듯, 이번 시정연설은 미래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의 중요성에도 방점을 찍었다. 윤 대통령은 이를 뒷받침하는 예산 처리에 힘써 달라고 당부하고 초당적 협력도 촉구했다.
하지만 이날 시정연설은 유감스럽게도 ‘반쪽짜리’ 시정연설로 끝나고 말았다. 민주당이 검찰의 대장동 수사를 정치보복으로 규정하고 대통령 시정연설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본회의장 밖에서 윤 대통령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강력한 투쟁을 예고했다. 아예 본회의장에 입장하지 않은 채 시정연설 자체를 전면 보이콧한 것은 헌정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장면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 대신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으로 들어가 예산안 관련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따라서 향후 예산안 심사가 난항에 빠지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예상되는 바다. 그러잖아도 어려운 민생에 숨통을 틔워 주진 못할망정 예산안 심의를 정쟁 도구화하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은 내년도 나라 살림살이의 큰 방향을 제시하는 대단히 중요한 자리다. 형식상 국회의원들 앞이지만 사실상 국민들에게 그 내용을 설명하고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것이다. 당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부당하게 느껴진다 해도 민주당이 예산안 시정연설까지 보이콧한 것은 본분을 망각한 처사라 할 수 있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169석을 가진 다수당의 횡포로, 나아가 국회의 품격을 망각한 행위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는 전원 본회의장에 착석해 시정연설을 들은 정의당과 비교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금 여야의 극한 대치 상황 앞에 해결해야 할 민생 과제가 산더미다. 힘 있는 야당이 할 일은 정부 예산안을 꼼꼼하게 따지고 살펴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것이다. 정치적 싸움을 할 땐 하더라도 검증과 비판이라는 본연의 책무를 놓아선 안 된다는 뜻이다. 이재명 대표 개인의 사법 리스크에 대한 당 차원의 방어가 정치를 파행으로 몰고 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민주당 일각에서조차 나온다. 민주당은 소모적인 정쟁을 접고 국정 현안과 민생 문제에 집중하는 대승적 결단이 필요하다. 국정 운영에 책임을 져야 할 여당인 국민의힘도 결코 다르지 않다. 정치 실종을 부채질하는 무책임하고 자극적인 언동을 삼가고 협치의 정신을 복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