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취향 #개성…재미있는 동네 슈퍼 ‘그로서리 스토어’
색다른 경험 찾는 이들의 눈길 끄는 부산의 ‘그로서리 스토어’
부산 수산물과 지역의 이야기 담고, 주인장의 취향·개성 담아
맛과 멋을 함께 사는 그로서리 스토어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부산 영도구 봉래동 아레아식스에 입점한 그로서리 스토어 ‘롤로와영도’.
‘남들도 사는 것, 다른 곳에도 파는 똑같은 것’이 아닌 ‘나만 아는 것,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 중요한 소비 가치가 됐다. 이런 트렌드에 맞춰 단순히 식료품을 사는 것을 넘어 재미와 경험을 함께 살 수 있는 ‘그로서리 스토어(grocery store)’가 뜨고 있다. 그로서리 스토어는 그야말로 식료품점으로, 서양에서는 식료품과 생활 잡화 등을 파는 슈퍼마켓의 형태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다르게 자리 잡고 있다. 매장마다 각기 다른 개성을 내세운 ‘편집숍’의 느낌이 강해졌다. 부산의 그로서리 스토어들은 부산에서 생산한 제품을 팔기도 하고 부산의 이야기를 제품에 녹여낸다. 또한 진열대를 채우는 주인장의 취향을 공유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동네의 이야기를 담다
“수지스 유기농 타르타르소스는 18세기 독일에서 미국 동부 뉴욕으로 이민한 자코버스가 고유의 레시피로 개발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인어아지매 건어물의 오징어나 삼진어묵의 어묵튀김과도 정말 잘 어울린답니다.” “영국의 말돈 소금은 1882년부터 숙련된 아티장들이 손으로 직접 만드는 방식으로 4대를 이어 전통 방식을 지켜오고 있어요. 바닷물을 증발시키지 않고 끓여서 얻어낸 자염이에요. 부산에도 ‘자염’의 역사가 있는 것 아시나요? 1900년도 초반까지 부산에서 생산했던 자염은 명지도의 갈대로 불을 지펴 가마솥에 바닷물을 팔팔 끓여 얻은 한반도의 소금이었어요. 낙동강 제방 공사와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값싸고 염도가 높은 천일염에 밀려 사라졌지요.”
롤로와영도에서 판매하고 있는 식료품들.
부산 로컬 브랜드 부산사이다는 롤로와영도의 판매 인기 품목이다.
부산 영도구 봉래동의 복합문화공간 아레아식스에 입점한 ‘롤로와영도 그로서리’에서 판매하는 식료품 소개 내용이다. 롤로와영도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크립톤’이 부산 영도를 시작으로 만든 로컬·지역재생 전문 조직 ‘크립톤엑스’가 지난 4월부터 운영 중인 곳이다. 해외와 각 지역에서 가져온 식료품과 롤로와 굿즈를 팔고 있다. 진열대에 놓인 식료품마다 소개하는 글과 활용 방법을 붙여 놓았다. 유기농 스낵, 무염 버터, 커리 시리얼, 상큼한 탄산음료 등 메모를 읽으면서 하나하나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롤로와영도의 직원은 잘나가는 품목 중 하나로 부산사이다를 꼽았다. 부산사이다는 부산, 영도, 송정, 다대포의 스토리를 담아낸 부산 로컬 브랜드이다.
롤로와영도는 좋은 물건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동네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 만큼 활발한 커뮤니티 활동이 눈에 띈다. 매월 한 차례 열고 있는 ‘롤로와 포틀럭 파티’는 참여자나 주제에 대한 제한 없이 먹을 것을 함께 나누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모임이다. 영도에서 일하고 있거나 영도의 사람들이 궁금한 청년들이 주로 모인다. 영도의 해변에서 쓰레기를 줍고 로컬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헤어지는 ‘롤로와 플로깅’도 진행한다. 화~금요일은 오전 11시~오후 8시, 주말과 공휴일은 오전 10시~오후 7시 운영한다. 월요일은 휴무.
■생선·고기 구워 주는 슈퍼
부산 남구 용호동 한 아파트 상가의 작은 가게. 고소한 생선구이 냄새가 발길을 붙잡는다. 얼음이 깔린 진열대에 먹갈치, 삼치, 가자미, 간고등어 등을 요리하기 좋게 잘 손질해 놓은 걸 보니 생선가게구나 싶었다. 그런데 생선 옆에 이베리코 목살, 숙성 한우 안심, 한우 채끝 등 정육이 있다. 뒤를 돌아보니 냉장고에는 소포장된 생선회, 와인, 치즈, 명란도 있다. 이곳은 신선한 해산물과 축산물을 내세운 그로서리 스토어 ‘은하수 상점’이다. 부산 수산물 전문기업인 은하수산이 지난 7월에 문을 열었다.
부산 남구 용호동의 해산물·축산물 그로서리 스토어 ‘은하수 상점’.
은하수 상점은 판매하는 생선과 고기를 무료로 구워 준다.
보통의 생선가게나 정육점의 타겟층이 주부라면, 은하수 상점은 ‘그로서리 스토어’의 트렌드를 더해 주부는 물론 2030 젊은 층까지로 타겟층을 늘렸다.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 생기고 있는 그로서리 스토어들이 ‘감성’을 내세워 MZ세대와 관광객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다면, 은하수 상점은 주민을 위한 동네 슈퍼 개념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고기와 생선을 무료로 구워 드립니다.” 은하수 상점의 그릴링 서비스는 동네 주민들에게 더욱 환영받는다. 아파트에서는 환기 걱정으로 생선이나 고기를 구워 먹기 힘든데, 따끈한 구이를 식탁에 바로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은하수산 신사업팀 정지원 매니저는 “신선한 해산물을 집 가까운 데서 편하게 살 수 있고, 조리해서 집에서 바로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은하수 상점의 강점이다”며 “단골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일요일은 휴무이며, 낮 12시에 문을 열고 오후 10시에 닫는다. 은하수 상점은 오는 12월까지 KTX 부산역에서 홍보를 위한 팝업스토어도 열고 있다. 팝업스토어에서는 그릴링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재미와 경험을 파는 공간
월요일이었던 지난 24일 오전 11시, 부산 수영구 광안리 해변에서 가까운 도로의 주택 건물 1층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하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은 물론 주민들도 줄을 선다는 쿠키 맛집 ‘마이페이보릿쿠키’의 풍경이다. 지난해 전포동에서 현재 위치로 가게를 옮기면서 그로서리 스토어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부산 수영구 광안동 ‘마이페이보릿쿠키’의 그로서리 진열대.
마이페이보릿쿠키의 굿즈도 함께 팔고 있다.
방문객들은 쿠키를 구매한 후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겨 그로서리 진열대를 배경으로 ‘쿠키 구매 인증사진’을 찍기도 하고 이색적인 식료품들을 구경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시리얼, 소스, 잼, 음료, 스낵 등 마트나 편의점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모두 주인장이 취향대로 골라 판매하는 것들이다. 에코백과 머그잔 등 마이페이보릿쿠키의 굿즈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수제 쿠키가 주력 상품이다 보니 그로서리 스토어의 비중은 크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잼’ 종류는 동네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품목이다. 다른 곳에서는 잘 팔지 않는 브랜드들이라 주기적으로 구매하러 오는 이들이 있다고.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한다.
전포동 카페거리의 카페·와인바 겸 그로서리 스토어 ‘브라운 그로서리 스토어’도 유명하다. 와인과 그로서리를 파는 광안종합시장의 ‘버터볼 그로서리’, 해리단길의 ‘유어네이키드치즈’도 힙한 감성으로 눈길과 발길을 끌고 있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