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러다간 국회의사당도 점거된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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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호 서울정치팀 부장

미국 정치 극단적 진영대결로 치닫고 있어
트럼프 지지자 의회 난입이 대표적 사례
한국 정치에선 내부의 쓴소리 ‘왕따’시켜
입맛 맞는 ‘사이다 발언’ 상대 포용 못해

〈총, 균, 쇠〉의 작가로 유명한 제러드 다이아몬드 UCLA(캘리포니아대 LA캠퍼스) 교수는 또다른 저서 〈대변동(Upheaval)〉에서 미국 정치를 극단적 진영 대결로 치닫게 하는 3가지 요인을 꼽았다.

먼저 정치자금 문제이다. 정치인이 특정 기업이나 이익단체로부터 정치자금을 받기 때문에 그런 집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금전적 도움을 받은 쪽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경향을 띤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을 거론했다. 게리맨더링은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자의적이고 부자연스럽게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을 말한다.

지역구 내에 중도층 유권자나 반대편 지지층이 골고루 분포해 있으면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는 그들의 의견이나 생각에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래야 한 표라도 더 얻어 당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가 잘 발달한 미국에서조차 게리맨더링이 횡행하다 보니 후보자들은 이미 자신에게 유리해진 선거구에서 다른 정파를 용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 요인은 우리 입장에서는 좀 황당한 것이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항공산업의 발전’을 극단적 진영정치를 불러오는 또다른 요인으로 분석했다.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에서 이동 수단을 자동차에 의존하던 시절만 해도 상·하원 의원들은 의회의사당이 있는 워싱턴 DC에 주로 거주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한 집 건너 근처에 다른 정당 의원이 살았고,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 가면 여야 의원들이 같은 학부모 자격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를 잘 알았다고 한다. 정치적 지향은 달라도 일상 생활을 함께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폭이 넓었던 것이다.

하지만 항공산업이 발달하고 웬만한 소도시에까지 공항이 생기면서 의원들은 회기가 아니면 모두 자신들의 지역구로 돌아가 버린다. 의원들의 가족도 대부분 지역구에서 생활하고, 의원 혼자서 워싱턴 DC의 조그만 숙소에서 지내게 된다.

의사당 내에서 자기 주장을 펼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때 말고는 다른 정당 의원들을 접할 기회가 줄었고, 그것이 곧 극단적 진영정치를 불러왔다는 것이 다이아몬드 교수의 진단이다.

2021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자 의회에 난입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경찰과의 무력 충돌로 4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을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미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이 얼마전 SNS에 “이재명 대표님, 그만하면 되었습니다.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와 주십시오”라고 적었다. 그러자 민주당 지도부는 ‘내부 결속’을 강조하면서 김 전 의원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굴하지 않고 김 전 의원이 “특정인을 지키기 위한 단일 대오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하자, 소위 ‘개딸’을 비롯해 민주당 의원들이 일제히 김 전 의원을 고립시켰다.

국민의힘에서는 유승민 전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뉴욕 발언 논란에 대해 “깨끗하게 사과하고 지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늙은 이준석”(김재원 전 최고위원) “민주당과 합작해 박근혜 끌어내린 장본인”(홍준표 대구시장) 등 그를 향한 날 선 공격이 이어졌다.

상대편보다는 자기 진영에서 나오는 쓴소리에 더 가혹한 것이 한국 정치의 현 주소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아직 금전적인 종속이라는 측면에서 미국보다는 자유롭다. 자본의 입김을 막아주는 선거공영제라는 제도적 장치가 잘 마련돼 있다.

영·호남과 수도권 일부 선거구에서 게리맨더링과 비슷한 효과를 갖고 있는 지역주의적 투표 성향이 여전하지만 중도 진영만 잘 공략한다면 상대 당 텃밭에서도 승산이 전혀 없지 않다는 것이 20~21대 총선에서의 경험이다. 국토가 좁아서 정당은 달라도 웬만하면 이웃사촌이라는 점도 미국과는 다르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구미에 맞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사이다 발언보다는, 미래를 고민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을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정치인을 높게 평가하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명절 때 친척들이 만나거나, 동창 모임에서 친구들끼리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금기시된 지 오래다. 자기와 다른 주장을 들을 여유가 없고, 상반된 의견이 맞설 때 중간지대를 찾는 지혜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우리 국회의사당도 언제든 불만 세력이 난동을 부리는 비극의 현장이 될 수 있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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