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추진, 당장 멈춰라”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28일 한수원 이사회 논의 예정
경수로 원전에 처음 짓는 시설
주민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 추진
영구 핵폐기장 가는 수순 우려
탈핵단체 철회 요구 기자회견

탈핵부산시민연대 등 부산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26일 부산시청 앞에서 ‘고리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 한수원 안건 폐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탈핵부산시민연대 등 부산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26일 부산시청 앞에서 ‘고리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 한수원 안건 폐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부산·울산·경남 지역사회의 거센 반발에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을 부산 고리원전에 짓는 안건을 이사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경수로 사용후핵연료의 건식저장시설을 주민 동의 없이 국내에서 처음 건설하려는 한수원의 독단적 태도를 놓고 지역을 무시한다는 비난이 인다. 한수원 이사회에서 해당 안건이 통과되면 부산이 사실상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장으로 전락하는 첫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지역사회의 격한 반발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수원은 28일 이사회를 열고 ‘고리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건설 기본계획’을 상정할 예정이다. 한수원이 이처럼 서둘러 건식저장시설 건설을 강행하는 것은 2031년께 고리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가 가득 차면, 원전을 가동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경수로 건식저장시설은 국내에는 아직 없는 시설이기 때문에 이사회에서 안건이 통과되면 안전성을 위해 저장시설과 저장용기 설계용역을 발주할 계획이다”면서 “건설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한수원의 이 같은 계획에 탈핵 단체는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탈핵부산시민연대는 26일 오전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수원 이사회가 기본계획 상정을 철회할 것으로 촉구했다. 시민연대는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장의 부지 선정도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수원 이사회가 기본계획을 의결한다면 고리원전은 영구적인 핵폐기장이 될 것이다”면서 “한수원이 방사선비상계획구역 내 지역주민의 의견수렴 없이 강행하는 일방적 행보에 분노를 느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연대는 또 “사용후핵연료는 10만 년 이상 관리해야 하는 아주 위험한 물질인데 안전성 확보를 위해 관리시설 부지 선정 및 기술개발 단계부터 규제기관이 참여하는 절차 마련이 필요하다”면서 “수도권의 안정된 전력수급을 위해 원전 지역의 무한 희생을 강요하는 현실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한수원이 주민 의견도 듣기 전에 이사회에서 고리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 건설을 결정한다면 이후에는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수원은 지난해 완공된 월성원전의 맥스터 추가 건설을 위해 2016년 4월 이사회에서 해당 안건을 의결하기도 했다. 다만 2019년 문재인 정부 때 출범한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가 월성원전 맥스터 건설에 대한 지역 주민 공론화를 권고하는 바람에 건설이 다소 지연되긴 했다. 문제는 고리원전 건식저장시설도 이 같은 공론화 과정을 거칠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 속에 고리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이 완공된 뒤 정부 계획대로 2060년에도 영구처분시설을 마련하지 못하면 고리원전 부지가 영구처분 시설로 굳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고리원전의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은 중수로인 월성원전과 달리 국내 가동 중인 경수로 원전에 처음 들어서는 시설이라는 점에서도 주민 불안은 커지고 있다. 중수로에는 천연우라늄을 핵연료로 사용하는 반면 경수로에는 농축우라늄을 쓰기 때문에 위험성이 더 크다. 게다가 지상에 노출돼 있어서 지진이나 해일 등 자연재해 또는 군사 공격에 타격받을 수도 있다.

월성원전의 맥스터 건설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던 경주환경운동연합 이상홍 사무국장은 “월성원전 맥스터 공론화 때도 경주 외에는 발전소와 인접한 울산시민 의견 수렴 절차가 빠지는 등 문제가 많았다”면서 “경수로 원전 부지에 처음 짓는 건식저장시설은 더더욱 정부와 좀 더 협의를 해서 진행해야 하는데 한수원이 독단적으로 안건을 상정한 것은 매우 성급하다고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