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전 밀집 부산·울산, 영구 핵폐기장까지 떠안으란 말인가
지진·전쟁 상황에 엄청난 피해 우려
항구적인 대책 세워 국민 설득해야
탈핵시민행동 관계자 등이 24일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와 경기도에 고준위핵폐기물 책임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물질’로 분류되는 사용후핵연료의 임시 저장시설 건설 계획이 마구잡이로 진행되고 있다. 부산 고리원전의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건설 계획을 강행하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28일 이사회를 열고 이 안건을 공식 상정한 뒤 속전속결로 일을 진행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부산일보〉 단독 보도에 따르면 한수원은 전날 갑자기 안건 상정을 보류하는 것으로 기류가 급변했다고 한다. 이는 이사회의 내부 반발과 막대한 건설 비용 분담 논란, 공론화 과정조차 밟지 않은 절차적 하자, 지역의 거센 반발 등이 주된 원인이다.
정부는 “언젠가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이 안건을 상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결국 정부의 핵폐기물 정책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는 사실만 스스로 드러냈다. 원전에서 배출되는 사용후핵연료는 수중 저장조에서 10년 이상 보관해 높은 열을 식혀야 한다. 고리원전에서 배출되는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기 위한 수조는 2031년께 가득 차게 된다. 현재 고리원전에 사용후 핵연료 8000여 다발이 저장돼 있고, 수명이 연장되면 추가로 발생하는 폐연료봉 1000다발도 지상에 적치될 수밖에 없다. 곧 원전 가동조차 어려워지는 상황이지만, 역대 어느 정권조차 영구처분시설 확보는커녕, 중간저장시설 부지 선정 작업조차 하지 않고 수수방관으로 일관했다.
한수원은 핵폐기물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고리원전 부지 안에 사용후핵연료 저장 시설을 2030년까지 건립해 핵폐기물을 임시로 보관하겠다는 계획을 공론화조차 없이 발표했다. 결국 영구처분장으로 전락할 우려가 큰 실정이다. 1978년 원전 가동 이후 부산·울산 주민이 줄기차게 핵폐기물 처분 대책을 촉구했지만, 공식적인 논의나 성과조차 없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하 500m까지 파 내려간 장소에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한수원 계획대로 지상에 임시로 고준위 핵폐기물 건식저장시설을 건설할 경우 지진이나 해일 등 자연재해는 물론이고 남·북한 대결 국면에서 빚어질 수 있는 테러와 전쟁 등으로 인한 피해는 상상조차 어려울 정도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와 탄소 중립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원전 활용과 핵폐기물 처리 대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정부와 한수원이 이런 상황을 악용해 고준위핵폐기물을 가뜩이나 원전으로 희생을 감내하고 있는 지역에 떠넘기는 핑계로 삼아서는 안 된다. 영구처분시설을 마련하기 힘드니, 원전 내 지상에 임시로 보관할 수밖에 없다는 궁색한 변명만 한다면 어떻게 제대로 된 정부라고 인정할 수 있겠나. 정부는 부산·울산을 핵폐기물 영구처분장으로 만들겠다는 위험천만한 발상을 폐기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급할수록 대책을 제대로 세워 국민부터 설득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