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지역어가 뭐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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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최현애 작가의 <애린 왕자>. 부산일보DB 최현애 작가의 <애린 왕자>. 부산일보DB

독일 출판사 틴텐파스의 〈어린 왕자〉 판본은 세상의 다양한 언어를 품고 있는 곳간이다. 시리아 지역 아람어판을 시작으로 지금껏 181개 언어로 발간했다. 알레만어, 고지 소르브어와 같은 독일 방언, 프랑스 중부지역 방언, 북미 토착어 오지브웨어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고딕어, 히브리어가 생명력을 얻었다. 특정 지역의 사람들이 사용하거나 이미 사라져 버린 언어들이지만 박제화되거나 희화화되지 않는다. 다양한 언어를 길어 올려 지배적 언어 장에 맞선다. ‘애린 왕자’와 ‘에린 왕자’도 그중 하나다. 각각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어 버전이다.

“‘질들인다’ 카는 기 먼뜻이냐꼬?” “‘관계를 맺는다’ 카는 뜻인데. 니가 나를 질들이모 우리사 서로 필요하게 안 되나. 니는 내한테 이 시상에 하나뿌인 기라. 내도 니한테 시상에 하나뿌인 존재가 될 끼고….”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경상도 지역어로 ‘길들인다’의 뜻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지역어는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서로 ‘길들여진’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소통체계이자 인식의 틀이다. 언어적 미감은 제쳐두더라도 지역의 문화와 정서, 감성과 기억, 생활과 가치관을 오롯이 담고 있다. 지역어란 대체 불가능한 체계이며,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어 번역하기 쉽지 않다. 〈애린 왕자〉의 작가 최현애는 서문 ‘친구들자테’에서 “두둥실 정겨븐 이 말, 이 사투리 이기 바로 내 친구들 그 자체”라 썼다.

오늘날 지역어의 가파른 소멸은 근본적으로 표준어 정책과 국어순화운동, 동화주의적 국어교육, 미디어의 표준어 중심주의, 지역어를 사용하는 공동체의 붕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중앙과 지방이라는 위계적 구분 짓기가 언어에도 적용된 셈이다. 지역어가 지위를 상실하는 과정에서 지역의 사회문화적 가치도 덩달아 추락했다.

잃은 것이 어디 이뿐이랴. 단일화와 표준화의 욕망은 다양성의 상실로 이어졌다. 언어를 의사소통의 도구로만 보는 편협한 인식은 효용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언어 빈곤을 초래했다. 언어의 가독성을 강조하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가독성을 높인다는 이유만으로 지역어의 맛깔과 깊이는 쉽게 무시되곤 한다.

지역어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지역 내에서도 존재한다. 언어가 곧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낸다고 여기는 것일까. 어설픈 표준어를 구사하는 낯선 풍경을 곳곳에서 마주친다. 지역민 스스로가 언어의 식민상황을 내면화하는 말글살이에서 지역어 존중과 발굴, 계승과 확산은 난망할 뿐이다.

다양한 어린 왕자 ‘들’이 뿜어내는 언어의 광휘 속에서 백석의 시를 되새긴다. ‘-하갓어’ ‘-슴네다’ ‘-우다’와 같은 어미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어휘만 부려쓰면서 평안도의 질박한 정서를 오롯이 담아내지 않았는가. 지역어는 오래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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