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주최·책임자 없는 참사, 겉도는 재난방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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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직전 현장 경고음 안이하게 대처
재발 방지 위해선 책임 반드시 따져야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와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책임 소재를 분명히 따져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건 발생 초기 정부와 지자체, 경찰이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 대책을 세울 수 없었다며 책임 회피식 발언을 해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장관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소방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고 했다. 관할 기초단체장인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이건(핼러윈) 축제가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고 구청에서는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했다고 했다. 국민들은 후진국형 참사의 충격 속에 정부 어디에서도 아무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에 더 절망하고 있다.

이번 참사와 관련해 정부가 얼마나 안이하게 대처했는지에 대한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부와 관할 지자체, 경찰 등이 군중 밀집이 예견된 사안에 안전 대책을 수립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행사 당일 현장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렸음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1일 참사 직전 현장의 심각성을 알리는 112 신고가 다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사고 발생 이전부터 많은 군중이 몰려 위험성을 알리는 급박한 내용이었다고 했다. 경찰이 초기의 위험 신호에 대처만 잘했어도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경찰은 2015년 ‘다중 운집 행사 안전관리를 위한 경찰 개입 수준에 관한 연구용역’을 통해 주최자 없는 행사의 안전 관리 필요성을 알았지만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참사를 막을 7년간의 세월만 허비했다.

외신들도 한국 정부의 대처가 미흡했다고 질타하고 있다. 미국 CNN은 한국 당국이 이태원 핼러윈 축제 군중에 대응할 지침이 없었다며 정부의 사고 대응과 군중 통제가 부족했다는 점이 명백하게 나타났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도 이태원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비극으로 보도했다. 한국 경찰이 군중이 통제를 벗어나지 않도록 세심한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유명한데 참사 당일에는 이러한 조치가 시행되지 않았다며 부족했던 경찰 인력도 그나마 대부분 범죄 단속 명령을 받았다고 했다. 불과 몇 주 전 이태원에서 정부가 후원하는 지구촌 축제에 차량 통행금지와 보행자 안내, 경찰 통제선이 있었다는 점을 대비하며 한국 정부의 책임을 따졌다.

국민의 안전은 국가의 무한책임 영역이다. 주최자 없는 행사였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것이다. 주최자가 없기 때문에 국가가 더 신경을 써서 안전관리에 나서야 마땅하다. 미국의 경우 연방재난관리청이 2005년 대규모 군중이 예상될 경우 압사 방지를 위한 비상 계획 매뉴얼을 만들고 미 전역 안전관리 공무원이 숙지하도록 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수백만 명의 인파가 몰려도 사고가 없는 이유다. 이번 이태원 참사의 재발 방지 대책이 힘을 받기 위해서는 책임 소재를 제대로 따져 묻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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