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전부터 “압사 당할 것 같다” 112 신고 빗발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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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112 신고 녹취록 공개
사고 전 모두 11차례 신고 접수
최초 신고 오후 6시 34분 이뤄져
급박한 상황 전하며 통제 요청
7건은 아예 출동조차 하지 않아
경찰 부실 대응 ‘이태원 참사’ 초래

이태원 참사 발생 나흘째인 1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유실물센터에서 시민들이 참사 현장에서 수거된 유실물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발생 나흘째인 1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유실물센터에서 시민들이 참사 현장에서 수거된 유실물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보세요. 클럽 가는 길 해밀톤호텔 그 골목에 이마트24 있잖아요.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거 같아요.”(10월 29일 오후 6시 34분)

“여기 지금 길바닥에 쓰러지고, 막 지금 너무, 이거 사고 날 것 같은데, 위험한데….”(10월 29일 오후 8시 33분)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막 압사당할 것 같아서….”(10월 29일 오후 8시 53분)

“지금 여기 사람들 인파들 너무 많아서 지금 대형 사고 나기 일보 직전이에요.”(10월 29일 오후 9시)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핼러윈 참사 몇 시간 전에 경찰이 접수한 112신고 녹취록(작은 사진)의 일부다. 이태원 곳곳에서 이미 참사 기미를 직감한 시민들이 필사적으로 경찰에 전화해 이 사실을 알렸다. 사고 전까지 모두 11건의 다급한 신고가 112에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지만, 경찰은 156명이 숨진 ‘핼러윈 비극’을 끝내 막지 못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조치가 미흡했다”며 참사 사흘 뒤에야 고개를 숙였다.



1일 경찰청이 공개한 이태원 참사 전 112 신고 녹취록을 보면 최초 신고는 지난달 29일 오후 6시 34분에 이뤄졌다. 119에 구조 신고가 처음 접수된 이날 오후 10시 15분보다 무려 3시간 40분이나 이른 시점이다. 신고자는 참사가 발생했던 해밀톤호텔 골목을 정확하게 지목하며 당시 상황을 상세히 전했다.

해당 신고자는 “지금 너무 소름 끼친다. 그 올라오는 그 골목이 굉장히 좁은 골목인데 이태원역에서 내리는 인구가 다 올라오는데, 거기서 빠져나오는 인구와 섞이고 그다음에 클럽에 줄 서 있는 그 줄하고 섞여 있다”고 말했다. 이 신고자의 전화를 받은 경찰관도 ‘압사’ 등의 표현을 되뇌며 사안의 심각성을 공유했다. 경찰관은 “사람들이 교행이 잘 안되고 압사, 밀려서 넘어지고 그러면 큰 사고 날 거 같다는 거죠”라고 되물은 것으로 확인됐다.

참사가 발생하기 전에도 사람들이 인파에 휩쓸리고 넘어져서 부상당하고 있다는 상황을 전파한 신고자도 있었다. 이날 오후 8시 9분에 경찰에 전화를 건 신고자는 “여기 사람들이 인원이 너무 많아서 정체가 돼서 사람들 밀치고 난리가 나서 막 넘어지고 있다”면서 “그래서 이것 좀 단속을 해 주셔야 할 것 같다”고 호소했다. 같은 날 오후 8시 33분 112에 접수된 신고에도 “사람들이 지금 길바닥에 쓰러지고 막 지금 너무 이거… 사고 날 것 같은데, 위험한데…”라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날 경찰이 오후 10시 10분까지 접수한 이태원 관련 신고는 모두 11건이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있던 시민들은 ‘압사’(5번) ‘넘어지고 밀고 다침’(4번) ‘아수라장’(1번) ‘대형사고’(1번) 등의 표현으로 현장을 생생히 묘사하며 경찰의 통제를 요청했다. 전화를 받은 경찰관은 신고자의 위치를 파악하고, 현장으로 출동하겠다고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경찰은 11건의 신고 중 현장에 출동한 것은 4건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출동도 않은 채 전화상담으로 종결했다. 경찰의 부실한 대응 상황이 세부적으로 확인될 경우 책임론을 두고 엄청난 후폭풍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태원 사고 관련 경찰청장 브리핑’을 열고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에 현장의 심각성을 알리는 112 신고가 다수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 신고 내용을 보면 사고 발생 이전부터 많은 군중이 몰려 사고의 위험성을 알리는 급박한 내용”이라며 “그러나 112신고를 처리하는 현장의 대응은 미흡했다는 판단을 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윤 청장은 이어 “경찰은 이번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밝히고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모든 부분에 대해 예외 없이 강도 높은 감찰과 수사를 신속하고 엄밀하게 진행하겠다”며 “오늘부터 경찰청에 독립적인 특별기구를 설치해 투명하고 엄정하게 사안의 진상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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