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의 SOS… 살릴 수 있는 ‘결정적 기회’ 몇 차례나 있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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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직전 112신고 분석해 보니

7건 해밀톤호텔 골목 찍어 신고
신고 간격 짧아지며 급박한 정황
통화 내용도 “압사” 구체적 언급
7번째 신고 뒤엔 출동조차 안 해
특단 조치 없던 경찰 대응 뼈아파

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156명이 숨진 참사 발생 수시간 전 경찰 112에 접수된 신고 11건(부산일보 11월 2일 자 1면 보도) 중에서도 7건은 사고가 발생한 해밀톤호텔 골목을 지목했다. 특히 당일 오후 8시 30분부터 9시 사이 112에 걸려온 세 번의 신고에 경찰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면, 적어도 참사 전까지 1시간 이상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경찰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부산일보>는 1일 경찰청이 공개한 참사 당일 112신고 녹취록을 토대로 신고자의 위치 등을 분석한 결과 11건 중 7건이 해밀톤호텔 골목의 위태로운 상황을 묘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6시 34분 112에 처음으로 전화를 건 신고자의 위치는 해밀톤호텔 골목 편의점, ‘이마트24’였다. 이 신고자는 “그 골목이 지금 사람들하고 오르고 내려오고 하는데 너무 불안하다”며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 당할 거 같다”면서 처음으로 ‘압사’를 언급했다.

이어 오후 8시 33분에 접수된 세 번째 신고 전화에서 신고자는 자신의 위치를 ‘와이키키 매장 앞’이라고 밝혔다. 네 번째(오후 8시 53분)와 다섯 번째(오후 9시) 신고자들의 위치는 해밀톤호텔에 있는 ‘브론즈라운지’로 동일했다. 계속해서 아홉 번째(오후 9시 51분) 신고자는 자신의 위치를 ‘108힙합클럽’, 열 번째(오후 10시) 신고자는 ‘이바돔감자탕’, 열한 번째(오후 10시 11분) 신고자는 ‘파운틴’이라고 알렸다.

세 번째 신고자의 위치, 와이키키와 아홉 번째 신고자의 108힙합클럽은 한 건물 안에 있다. 이태원로 27가길에서 해밀톤호텔 골목으로 접어드는 곳이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신고자들의 위치, 브론즈라운지는 와이키키에서 골목을 끼고 마주보고 있는 해밀톤호텔 안에 있으며, 파운틴 또한 그 주변이다. 즉, 이들 업소 4곳은 모두 이태원로 27가길과 해밀톤 골목이 만나는 삼거리 모퉁이에 있는 셈이다.

열 번째 신고자의 위치 이바돔감자탕은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4번 출구 근처이기에 사고 장소와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신고자는 경찰 통제 요청 지역을 ‘이바돔 감자탕 앞에 골목길’로 해밀톤호텔 골목을 정확하게 지목하고 있다. 아마도 신고자가 이태원로를 사이에 두고 해밀톤호텔 건너편에서 골목의 현장을 목격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7번의 신고 중 경찰이 대규모 인력을 파견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결정적 신고는 무엇일까. 경찰은 오후 6시 34분 112로 걸려온 최초 신고 때 현장에 출동해 몰린 인파를 해산시킨 뒤 상황을 종결했다고 한다. 경찰의 해명이 맞더라도 오후 8시 33분부터 9시까지, 해밀톤호텔 골목 주변에서 걸려온 세 차례 신고에 특단의 조취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사안이다.

이 세 건의 신고는 우선 참사 발생 1시간 전인 오후 9시 15분 이전에 이뤄진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경찰이 이때 발빠르게 대응했더라면 참사 전 1시간 이상의 ‘골든 타임’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신고 간격이 짧아진 데다 7분 간격으로 전화를 건 네 번째, 다섯 번째 신고자들 위치 또한 브론즈라운지로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에서도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신고자들의 통화 내용도 이를 잘 보여준다. 와이키키 매장 앞에서 전화를 건 세 번째 신고자는 “사람들 지금 길바닥에 쓰러지고, 막 지금 너무, 이거 사고 날거 같은데…, 위험한데…”라고 전했고, 브론즈라운지에서 전달된 네 번째 신고에도 “사람들이 많아서, 사람들이 압사당하고 있다. 아수라장이다”는 내용이 있다. 시민들은 참사가 벌어진 오후 10시 15분 전에도 사고 장소에서 거대한 인파 속에 사람이 넘어지고 있다고, 경찰에 필사적으로 전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경찰은 11건의 신고 중 4번만 출동했으며, 이 세 건의 신고 중에서는 오후 9시에 이뤄진 다섯 번째 신고 때만 출동했다. 그것도 오후 9시 이후에 접수한 신고 5건에 대해서는 출동조차하지 않았다. 핼러윈 행사의 특성상 야간 시간대에 인파가 더 몰린다는 게 상식이다. 경찰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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