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진정한 사과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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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자기 잘못을 직시하고 인정해야 하며, 잘못을 인정했을 때 자신의 평판이 떨어지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도 기꺼이 감내해야 한다. 앞으로 다시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며 이를 실행해야 한다.’

인터넷에서 사과란 무엇인가를 검색했을 때 공통으로 나오는 설명이다. 특히 정치인, 지도자들과 관련해 사과의 사례로 독일의 총리 빌리 브란트가 소개된다.

그는 1970년 겨울,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하여 전쟁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헌화하던 중, 독일의 과거를 반성하며 전쟁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흐느꼈다.

폴란드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조국, 독일이 저지른 나치의 반인륜 범죄 행위에 대해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진심으로 표출된 것이다. 한 나라의 총리가 빗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참회하는 모습에 결국 적대감으로 응어리졌던 폴란드 국민의 마음이 열렸다.

100년이 넘은 긴 시간 동안 전쟁의 아픔과 식민지의 고통을 안겨 준 폴란드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건 진정성 있는 사과였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이태원 참사 이후 총리, 장관, 시장, 구청장, 경찰청장 등 지도자들의 틀에 박힌 사과가 이어진다. ‘심심한 사과’라는 문구가 어김없이 나온다.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가 지루하다는 뜻과 혼동해 일명 ‘MZ세대 문해력 논란’을 일으켰던 바로 그 문구다.

희생자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MZ세대에게 지도자와 기성 정치인들은 뻔뻔하게도 ‘심심한 사과’라는 문구를 내밀었다. SNS에는 차라리 솔직하게 마음이 없다는 뜻의 ‘무심(無心)한 사과’라고 말하라는 지적이 있을 정도로 형식적인 사과에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를 화나게 하는 사과와 반대로 우리를 아프게 하는 사과도 쏟아진다. 참사 현장에서 구조대와 함께 CPR을 하고 이송을 돕고 인파에 갇힌 이들을 빼낸 시민 영웅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더 많이 살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심지어 10대 청소년을 구하고 다시 현장에 갔지만 그 누나를 살리지 못했다며 한 시민은 직접 유족을 찾아가 누나를 구하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언론과 SNS에 시민 영웅의 가슴 시린 사과는 계속 이어진다. 정작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 수장, 대통령은 아직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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