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의 쏘울앤더시티] 파워 반도체 클러스터 키우자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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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부산 10년간 R&D와 생산 기반 갖춰
상용화센터에서 실제 제품도 생산
전국의 전문 기업들 기장으로 온다
 
e-모빌리티 시장 성장 미래산업 부상
지역의 새로운 성장 동력 가능성
정부의 집중적 지원·투자 이끌어 내야

지난달 26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동남권 방사선의·과학산업단지에서 파워 반도체 제조기업 제엠제코㈜ 준공식이 열렸다. 부산 이전 1호 반도체 기업 제엠제코는 본사와 연구소, 공장을 경기도 부천에서 모두 옮겨 왔다. 연 매출 100억 원대 중소기업이지만 파워 반도체 분야에서 탄탄한 기술력을 갖춘 강소기업이다. 무엇보다 이 작은 기업에 주목하는 것은 파워 반도체 클러스터로서 부산의 성장 가능성 때문이다.

부산시가 파워 반도체(전력 반도체) 산업에 뛰어든 것은 2012년의 일이다. 반도체 하면 삼성이었고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국내 시장에서 전력 반도체라는 용어 자체도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시는 당시 기장군 장안읍에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중입자가속기, 연구용원자로를 유치하고 생명공학을 미래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동남권 의·과학산업단지를 조성 중이었다. 이 과정에서 파워 반도체 공정이 연구용원자로와 연계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관련 산업을 클러스터화 하기로 계획한 것이다. 전문가를 수소문한 끝에 차세대 파워 반도체 R&D를 진행 중이던 한국전기연구원과 손잡고 정부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몇 년에 걸친 도전 끝에 2016년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고 2017년부터 국비를 확보해 ‘SiC 파워 반도체 연구플랫폼 구축사업’과 ‘SiC 파워 반도체 R&D 사업’을 시작했다. 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부산테크노파크와 파워 반도체 상용화센터를 구축해 실제 제품을 생산하는 단계에까지 왔다. 이러한 R&D와 생산 시설을 기반으로 파워 반도체 전문 기업 집적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 10년 세월 전기차와 드론 등 e-모빌리티(e-mobility) 시장이 성장하면서 파워 반도체가 미래산업으로 급부상했다. 반도체 산업은 크게 보면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분야인 시스템 반도체, 그리고 모든 전기의 전력 변환 장치에 들어가는 파워 반도체로 구분된다. 삼성은 초창기 메모리와 파워 반도체를 했지만 IMF 외환 위기 당시 국내 반도체 시장 빅딜 과정에서 파워 반도체를 포기했다. 하지만 e-모빌리티 시장이 급팽창하며 파워 반도체 비중이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부산이 10년에 걸쳐 산업 기반을 다져 온 파워 반도체가 세계적으로 가장 뜨거운 산업 분야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전기차뿐만 아니라 친환경산업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전력을 기반으로 한 모든 산업 분야에서 파워 반도체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시장에서 독일과 일본이 앞서고 있지만 파워 반도체 소재가 기존 실리콘에서 전력 제어 능력이 600배 뛰어난 탄화규소(SiC·실리콘카바이드)로 넘어가고 있는데 부산의 상용화센터에서 SiC 기반으로 R&D와 생산을 진행하고 있어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집중적 투자가 이뤄지면 글로벌시장에서 충분히 경쟁이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부산의 위기는 곧 산업의 위기다. 전통산업이 몰락하면서 지역 경제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젊은이들은 지역을 떠나고 있다. 젊은이들이 없으니 혁신의 동력이 떨어지고 새로운 산업을 만들지 못하는 악순환 구조다. 지역의 최대 현안인 2030월드엑스포와 가덕신공항도 결국은 지역의 산업을 일으키는 것이 궁극적 지향이다. 옛 삼성자동차 유치 범시민운동과 같이 대기업 유치에 목을 매던 시절도 지나고 있다. 지역 스스로 산업생태계를 혁신하고 미래 동력을 키워야 하는데 파워 반도체가 그런 영역이 될 수 있다. 대학과 연계해 인력을 양성하고 R&D 역량 축적을 통해 산업을 키울 수 있는 지산학(지자체·산업·대학)의 이상적인 모델로도 가능한 분야다. 또 동남권은 기존에도 파워 반도체 소재를 만드는 삼성전기, 불량 유무를 확인하는 리노공업, 모터와 인버터를 만드는 코렌스이엠, 전기차를 만드는 현대차와 르노차 등 거대한 파워 반도체 밸류체인이 가능한 경제권으로 가능성이 높다.

결국은 지역의 관심과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관건이다. 정부의 K반도체 정책은 여전히 수도권 중심의 메모리와 일부 비메모리 투자에 집중돼 있다. 정부도 미래 전략산업으로 파워 반도체의 중요성을 알고 있고 대통령 공약사업에도 들어 있는 만큼 전체 반도체 산업의 작은 한 부분이 아니라 부산을 중심으로 클러스터를 키우기 위한 집중 지원을 이끌어 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의 미래도 대규모 위탁 생산보다 파워 반도체와 같이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가고 있다. 설계와 웨이퍼 제조, 부품 등 관련 업체들을 클러스터화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견 기업들이 모이고 R&D가 활발하게 이뤄지다 보면 새로운 혁신도 일어날 수 있다. 기장 장안읍에서 삼성전자나 테슬라 같은 기업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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