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의 경제학자’에서 ‘정책 입안자’가 되기까지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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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의 시대 / 빈야민 애펠바움

1960년대 경기 과열로 ‘인플레’ 발생
‘정부가 경제 조정’ 케인스주의 흔들려
‘시장 기능에 맡기자’ 시카고학파 등장
정부 개입에 부정적인 정치인 파고들어

시카고 대학의 밀턴 프리드먼은 경제 규제를 완화하고, 세계화를 이루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기업과 시장에 무한한 자유를 주는 경제 이론을 펼쳤던 그가 한 TV 방송물에서 조폐 중인 달러를 들고 있다. 부키 제공 시카고 대학의 밀턴 프리드먼은 경제 규제를 완화하고, 세계화를 이루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기업과 시장에 무한한 자유를 주는 경제 이론을 펼쳤던 그가 한 TV 방송물에서 조폐 중인 달러를 들고 있다. 부키 제공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미국에서 발생한 대규모 채무불이행과 금융회사 파산이 초래한 금융위기는 1929년의 대공황에 버금가는 세계적 경제 혼란을 초래했다. 주된 원인은 미국 금융계가 관행적으로 실시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때문이었다. 2000년대 초 미국의 저금리 기조와 주택 소유열풍은 부동산 수요와 가격을 급등시켰다. 이후 미국 정부는 치솟는 집값을 잡고자 금리를 대폭 인상했고, 상환 능력이 없는 대출자들의 대규모 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했다. 채무자들은 거리로 몰리고, 금융사들은 연쇄 도산에 직면했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채무불이행이 아니라 미국 은행 및 금융사가 몰린 월스트리트의 도덕적 해이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윤과 실적을 위해 무분별하게 금융상품을 남발하고 부채로 몸을 불린 것이다. 신용평가기관들도 최우수 등급 판정을 남발하면서 사태를 부추겼다. 미국발 금융 위기는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모든 것을 시장 원리에 맡기라고 강조했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에게는 백기투항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주장하던 경제 이론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경제학자의 시대〉는 미국발 금융위기 이전의 경제사를 파헤친다. 〈뉴욕타임스〉 경제 및 비즈니스 분야 주필이기도 한 저자 빈야민 애펠바움은 1969년부터 2008년까지의 40년을 ‘경제학자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그는 혁명가도 종교 지도자도 아닌 한 무리의 경제 학자들이 불과 4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전 세계 인류의 경제적 처지와 노동 조건, 사회복지와 생활상, 심지어 사람들의 사고방식까지 심대하게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것은 아주 먼 과거의 일도 아니고 바로 우리 앞 세대 혹은 우리 세대에 벌어진 드라마틱한 일대 격변이었다.

지금은 경제학자들이 학계는 물론 기업과 산업계, 법조계, 정치권과 공공영역 곳곳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상황이 달랐다. 경제학자는 각종 기관에서 정책 결정권자들의 의사결정을 뒷받침할 자료나 만들던 ‘골방의 학자들’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 경제학자는 정책 입안자가 되었다. 미국 정부가 임용한 경제학자 수가 1950년대 중반 2000여 명에서 1970년대 말 6000여 명 이상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 40년의 기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정치권과 세계를 사로잡았을까. 196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호기를 맞는다. 1965년 말 즈음부터 경기가 과열되더니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정부가 경제를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케인스주의의 위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꾸로 정부의 개입은 경제에 부작용만 일으킬 뿐이니 통화 정책 외의 모든 것을 시장에 완전히 맡기라는 주장이 점차 정부 운영에 자신감을 상실한 정치인들을 파고들었다. 1969년은 그때까지 경제학의 주류였던 케인스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상징하듯 시카고 대학의 보수파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타임〉 지의 표지를 장식한 해이기도 하다. 이를 기점으로 시카고학파의 경제학은 점차 새로운 주류로 등장하여 세계를 뒤흔든다.

이 흐름의 선두에 선 학자가 시카고 대학의 밀턴 프리드먼이었다. 1940년대와 1950년대 내내 케인스주의에 밀려 자신의 견해를 제대로 펼치지 못하던 프리드먼은 대학에 둥지를 틀고 통화와 금융을 주제로 한 연수회를 25년간 운영하면서 통화주의자들을 육성하고 있었다. 이른바 시카고학파의 태동이다. 이들은 거침없이 무대 위로 올라섰다. 이 시기에 경제학자는 과세와 공공 지출을 제한하고, 규모가 큰 경제 부문에서 규제를 완화하고, 세계화를 향한 길을 마련해 나가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연방 법원을 설득해 독점금지법을 적극 집행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시장 자유주의와 보수적 신념으로 똘똘 뭉친 경제학자들은 규제를 풀고 세금을 내렸다. 기업과 시장에는 무한한 자유를 주었다. 또한 이들은 제3세계 여러 나라의 학생들을 시카고 대학으로 불러들여 자신들의 경제 정책을 가르쳤다. 후일 신자유주의라고 명명된 전 세계의 거대한 변화는 이렇게 지구촌으로 퍼져 나갔다.

저자 애펠바움이 직조한 40년의 역사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이나 상찬과는 거리가 멀다. 애펠바움은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쌓여 한 시대가 만들어졌음을 냉정하게 성찰하면서 ‘경제학자의 시대’가 이룬 성과와 함께 역사적 한계를 면밀하게 살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오늘날까지 자본주의가 걸어온 길, 그 모험과 도전의 역사를 때로는 다큐멘터리처럼, 때로는 박진감 넘치는 대하소설처럼 펼치는 이 책은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다. 빈야민 애펠바움 지음/김징원 옮김/부키/752쪽/3만 5000원.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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