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육청 건축설계공모위, 돌연 해체… 공정성 약화 우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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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수 교육감 취임 직후 해체시켜
민간전문가 참여, 전임 교육감 도입
특정 업체 쏠림·비리 차단 취지
심사위원 선정 등 각종 부작용 예상

부산시교육청 전경. 부산일보DB 부산시교육청 전경. 부산일보DB

부산시교육청이 1년여 전 건축설계공모 공정성 강화를 위해 도입한 민간위원회를 하윤수 교육감 취임 직후 돌연 해체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심사위원 선정 등 공모 절차가 과거 방식으로 회귀하면서 공정성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4일 부산시교육청과 지역 건축계 등에 따르면 ‘부산시교육청 건축설계공모 운영위원회’(이하 운영위) 활동이 지난 7월 말 갑작스럽게 종료했다. 지난해 상반기 출범한 운영위는 올해 임기가 1년 연장돼 내년 4월까지 운영될 예정이었지만, 하 교육감 취임과 함께 해체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교육청은 공문 발송 등 정식 해촉 절차 없이 구두로 운영위원장(유재우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 등에게 활동 종료를 통보했다.

대학교수와 건축사 등 민간전문가가 참여하는 운영위는 전임 교육감 시절인 지난해 4월 도입됐다. 건축설계공모의 전문성과 작품성을 확보해 교육시설 디자인 혁신을 이끌겠다는 취지였다. 이면에는 특정 업체 당선작 쏠림 문제와 시설공사 관련 비리로 인한 청렴도 하락 등의 배경이 있었다.

실제 몇 년 전부터 시교육청이 발주한 건축설계 공모에서 A업체 응모작이 연이어 당선되자 지역 건축계에선 뒷말이 무성했다. 관련법 개정으로 설계공모가 본격화한 2019년부터 운영위 출범 직전까지 시교육청이 발주한 건축설계공모 당선작을 보면, 전체 12건 중 8건(66.7%)이 A업체 작품이었다. 모두 설계용역비가 6억~10억 원대에 달하는 대형 공사로 용역비 기준으로는 83억 원 중 71억 원(85.5%)이 A업체에게 돌아갔다. 이에 더해 A업체의 계열사 대표가 과거 시교육청 시설직 고위 간부 출신이어서 주변 업계에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왔다.

공공기관 건축설계공모 제도는 건축서비스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2019년 1월부터 활성화됐다. 설계비 1억 원 이상 공공기관 건축물에 대한 설계공모가 의무화됐고, ‘설계공모 관련 업무를 전문기관에 의뢰할 수 있다’는 조항에 따라 시교육청은 A업체 독식 등 부작용이 나타나자 지난해부터 운영위를 꾸렸다.

시교육청 운영위는 심사위원 추천과 지침서 검토, 심사현장 참관 등의 역할을 맡았다. 특히 운영위는 과거처럼 100여 명의 명단 중에서 무작위로 심사위원(9명)을 추첨하는 대신 운영위원들이 토론을 거쳐 심사위원(5명)을 선정하도록 방식을 변경했다. 운영위원장을 맡았던 유재우 교수는 “부산건축사회와 대한건축학회 부울경지회, 부산건축가회 등 3개 단체로부터 추천을 받아 공정성에 대한 평판을 두루 들은 뒤 86명의 심사위원 명단을 꾸렸고, 공모 건별로 학연·지연이 겹치지 않도록 대학과 성별을 골고루 안배해 심사위원을 추천했다”며 “심사가 끝난 뒤엔 위원들이 제대로 심사했는지 사후 모니터링해 다음 추천 때 반영하는 등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운영위 활동 이후 진행된 건축설계 공모에서는 특정 업체 당선작 쏠림 현상이 사라지는 등 과거 문제점이 상당 부분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운영위 해체 직후 실시한 모 초등학교 신축설계공모 심사에선 다시 A업체가 당선되며 구설을 낳았다. 다만, 해당 공모의 심사는 운영위가 해체되기 전 추천한 심사위원들이 맡았다.

시교육청은 이번 운영위 해체가 행정적인 업무 부담을 줄이고 민간 참여에 따른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김창주 시교육청 시설과장은 “시교육청 공모의 경우 건물 용도가 대부분 학교시설이라 지침서가 어느 정도 표준화돼 운영위에서 별도로 검토할 필요성이 적어졌다”며 “민간 운영위원들에게 심사위원 지명권을 주다 보니 의도는 좋더라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있어 다시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변경했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건축설계공모 심사위원 추첨대상 명단을 부산·울산·경남 중심으로 192명까지 늘리고, 감사관실 공무원 입회 하에 외부인이 추첨(탁구공 번호 뽑기)을 진행하는 등 과거 무작위 추첨 때보다 공정성을 강화했다고 덧붙였다.

시교육청 해명에도 불구하고 지역 건축계에선 공정성 약화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지역 건축계 한 관계자는 “운영위에서는 과거 비리로 얼룩진 이들을 심사위원에서 원천 배제하고 대학교수 중에서도 ‘설계’를 볼 줄 아는 이들만 후보로 넣었는데, 시교육청이 심사위원을 200명 가까이로 늘리면서 심사 자격이 안 되는 위원이 더 많아져버린 상황”이라며 “심사위원을 부울경으로 한정하면 업체의 사전접촉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전국으로 확대해 타 지역 전문가의 공정한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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