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이태원 참사와 국가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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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수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부 재난 대처 보며 불안·분노
‘이게 국가냐’ 국민 반문 들어야

국가 위기관리체계 사라지고
참사에 대한 책임·성찰 없어

공화제는 공공 중심의 사회
실종된 국가 역할 되찾아야

지난달 29일 밤 10시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는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인파가 몰리면서 해밀톤호텔 옆 5.5평의 좁은 골목에서 대형 압사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 158명, 부상 196명으로 희생자 규모 면에서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만큼 충격의 참사였다. 이 비극적 사고는 피할 수 있었던 재난이었다. 2014년 세월호에 이어 우리는 다시 수많은 꽃다운 생명을 잃게 되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의 재난 대처 실패와 무능, 무책임을 보면서 실망을 넘어 위기와 불안, 분노를 느끼게 된다. 이번 사태는 ‘이게 국가냐’라고 반문할 만큼 국가의 실종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실종 사태인 첫 번째 이유는 재난 대응에서 국가의 종합 위기관리체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정부뿐 아니라 대학과 병원 등 모든 대규모 시설들이 재난에 대비해 종합적 위기관리계획을 수립해 대처하고 있다. 재난 발생 시 피해 최소화-준비-대응-복구 계획을 중심으로 체계적 접근을 한다. 이태원에서는 수년 동안 핼러윈 축제가 이어져 왔고 올해 역시 무려 13만 명이 좁은 골목 중심으로 운집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산구청과 용산경찰서의 질서유지 계획은 현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참사 전날 이미 발 디디기 어려울 정도로 위험 상황이 발생했고 사고 발생 3시간 40분 전부터 ‘압사’를 우려하는 다급한 신고가 총 11건이나 접수되었으나 무시되었다. 용산경찰서는 서울경찰청에 기동대 지원 요청을 했으나 거절되었다. 배치된 경찰은 ‘정부 기조’에 맞춰 마약단속을 위한 사복경찰 위주로 투입되어 현장 질서는 아예 핼러윈 축제 대응계획에서 배제되었다. 관할 경찰서장은 근처 대통령실 인근 집회를 관리하다 사건 발생 50분이 지나서야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했다. 경찰 지휘부와 이를 관할하는 행정안전부 장관은 참사 1~2시간이 경과된 이후 보고를 받는 등 촌각을 다투는 초대형 인명 참사의 지휘체계는 늑장과 무능으로 이미 허물어진 상태였다.

두 번째는 참사에 대한 책임의 실종이다. 책임은 책임성(responsibility)과 책무성(accountability)으로 구분된다. 발생한 재난의 법과 규정의 시시비비를 사후적으로 가리는 것은 책무성으로 매우 협의적이다. 이에 반해 사전적이고 전반적이며 실질적인 것은 책임성이다. 경찰과 소방의 대응으로도 참사를 막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행안부 장관, 외신기자 앞에서 농담 섞인 발언을 한 국무총리, 그리고 막연하게 정부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 모두 협의의 책무성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이는 국민의 70% 이상이 이번 참사 원인이 정부에 있다는 책임성을 무시하는 태도이다. 이참에 많은 재난에 쉽게 인용되는 하인리히 법칙의 위험성을 지적해 보자. 하나의 대형 사고에는 29회의 경미한 사고와 300회의 징후가 있다는 미국 윌리엄 하인리히의 주장은 일상 재난에 대한 주의로는 의미가 있으나, 재난을 현장 사람들 책임으로 돌리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재난의 대형화, 복잡화, 상호연계화 흐름 속에 관리체계와 상부 관리자의 역할이 강화되는 현대적 재난 특성과는 맞지 않는다.

세 번째는 성찰의 실종이다. 대참사의 책임이 경찰 최고위직과 그 너머에 미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경찰과 소방 하위직만 조사, 입건해 꼬리자르기식으로 귀결될 우려가 있다. 대통령실의 재난 대응을 추궁하는 국감장에서 ‘웃기고 있네’라는 필담이나 주고받는 수석들의 수준은 성찰은 고사하고 반성의 기미도 없는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로 규정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의 과학, 기술, 산업 자체가 위험의 근원이 되고 위험이 사회현상의 중심이 되는 후기 근대에서 위험사회 극복 대안으로 ‘성찰적 근대화’를 강조한 바가 있다. 그의 핵심은 사회를 전체로 보고 시민이 위험사회를 감시하도록 신뢰와 협력 중심의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다.

최근 영국과 미국 등에서 사회복지 및 돌봄을 비롯한 모든 정책에 사람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람 중심의 설계’가 강조되고 있다. 또한 모두의 공유자산을 의미하는 ‘커먼즈(commons)’를 지키려는 관심과 노력도 뜨겁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여기서 공화제(Republic)의 어원은 라틴어 'res pubilca(공공의 것)'로 공공이 중심이 되는 사회이다. 아직은 ‘부족주의’ 수준에 머문 정치권과 윤석열 정부가 성찰해야 할 부분이다. 함께 성찰하여 실종된 국가의 역할을 되찾는 것도 결국은 국민의 몫이다. 국가 실종으로 희생된 이들을 깊이 애도하며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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