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대표 전화번호 도용한 신종 보이스피싱?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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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용유 구매 위해 제조업체 연락
저렴한 제품 미끼 선입금 요구
입금 후 전화하자 ‘유령 인물’
피해자 “대표번호라 의심 못 해”
부산·경남서 유사 수법 잇따라

부산 강서경찰서 건물 전경 부산 강서경찰서 건물 전경

부산에서 한 제조업체의 대표번호를 도용해 저가 판매를 약속하며 선입금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억대를 가로챈 보이스피싱 의심 사례가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최근 경남 김해시에서도 비슷한 수법의 피해가 발생해 경찰은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일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부산 강서경찰서는 식용유를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한다며 선입금을 요구한 보이스피싱 의심 사례가 접수돼 수사 중이라고 21일 밝혔다.

경찰 등에 따르면 강서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60대 피해자 A 씨는 지난달 지인인 B 씨와 함께 식용유 구매를 위해 부산의 한 식용유 판매업체와 연락했다. 업체 대표번호로 전화한 B 씨는 자신을 업체 측 판매담당자라고 밝힌 C 씨에게 식용유 구매 의사를 전달했다. C 씨는 이들에게 공급처에 문제가 생겨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식용유가 있다고 말했고 공급처와의 조율을 위해 일부 금액을 선입금해달라고 요구했다.

C 씨로부터 제품 샘플과 사업자등록증 등을 받은 A 씨는 C 씨가 알려준 계좌번호로 1억 4000만 원의 거래금액 중 9000만 원을 선입금했다. B 씨의 또 다른 지인도 식용유 구입을 위해 C 씨에게 5000만 원을 입금했다.

하지만 A 씨가 입금 이후 제품을 받기 위해 C 씨에게 연락하자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A 씨는 다시 업체에 전화해 C 씨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호소했지만 업체로부터 C 씨가 업체 직원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

A 씨는 “일반적인 보이스피싱처럼 먼저 연락을 받은 것도 아니고 회사 대표번호로 전화한 뒤 담당자와 연결이 됐기 때문에 가짜 직원일 것이라고는 의심하지 못했다”면서 “C 씨가 업체 사업자등록증이나 명함도 위조한 것을 보면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해당 업체 측은 사건 발생 직전 자신을 통신업체 직원이라고 사칭한 인물로부터 대표번호로 걸려 오는 전화를 수신하는 내선번호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선번호를 잠시 변경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업체 관계자는 “지난달 17일 보이스피싱 일당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공사를 이유로 내선번호를 특정번호로 변경해 달라고 요구했고 3일 뒤 이상함을 느껴 다시 원상복구했다”면서 “사건을 인지한 직후 거래처에 연락을 돌려 추가 피해 여부를 확인했지만 다른 업체에서는 피해사례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업체도 자신들도 피해를 본 만큼 수사 결과에 따라 책임 여부가 밝혀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편 최근 경남 김해시에서도 유사한 피해가 발생해 기업 대표번호를 도용한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올 6월 김해에서는 대기업 식품회사인 삼양사의 대표번호를 도용해 식용유 판매대금 3000만 원을 가로챈 사례가 발생해 경찰이 수사 중이다. 사건을 인지한 삼양사 측은 회사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최근 식품 도매상을 대상으로 삼양사 직원을 사칭해 선입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다수 접수돼 주의를 당부한다”는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지한 바 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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