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파의 생각+] ‘빈곤 포르노’를 둘러싼 ‘정치 포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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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공모 칼럼니스트

본질과 무관한 지엽적인 말싸움
이를 보는 국민들마저 낯 뜨거워
진정 국익 위한 건설적 논의 기대

최근 캄보디아를 방문했던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현지 어린이집을 방문해 찍은 사진을 두고 정치권이 시끄럽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김 여사의 사진을 보고 ‘빈곤 포르노(poverty porn)’라고 비판하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그 표현 자체가 인격 모욕적이고 반여성적이라고 반발하며 장 위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나아가 대통령실에서는 장 위원이 사진을 촬영할 때 조명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조명을 사용해 사진을 촬영했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경찰에 형사 고발했다.

정치 공방의 핵심인 빈곤 포르노란, 타인의 빈곤 혹은 취약한 상태를 사진이나 영상물 등을 통해 자극적으로 묘사하고, 이를 활용하여 동정심을 불러일으킨 뒤 기부금 혹은 사회적 존경심 등을 얻으려는 행위를 말한다. 용어의 개념과 정의 자체에는 문제가 없으나, 이 용어에 사용된 포르노란 단어가 품은 폭발성 때문인지 여당, 야당 그리고 대통령실까지 모두 논란에 불을 지피며 정치 공방을 벌이고 있다.


논란의 발단인 장경태 최고위원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당시 영상을 보면, 김 여사에게 안긴 소년은 14살로 매우 크고 혼자 앉아 이야기하는 것에 불편함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굳이 사진을 찍는 시점에 안겨 있어야 했는가, 또 사진 구도가 김 여사에게 맞춰졌으며, 비공개 일정임에도 대통령실이 이 사진을 촬영해 언론에 공개했다는 점에서 사진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어 장 위원의 주장처럼 빈곤 포르노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목적이 옳다고 잘못된 수단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빈곤 포르노라는 자극적 소재를 강조하고 싶은 나머지, 객관성과 전문성을 담보할 수 없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을 외신의 분석인 것처럼 혹은 그렇게 오독하도록 유도해 조명을 동원한 사진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잘못이다. 물론 장 위원의 말대로 불을 켜고 도둑질했든, 불을 끄고 도둑질했든 빈곤 포르노를 찍은 것은 사실일 수 있겠으나, 그것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허위 근거를 대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다음으로 여당의 대응을 살펴보자. 장 위원이 김 여사의 사진에 대해 빈곤 포르노라고 비판하자, 주호영 원내대표는 ‘표현 자체가 인격 모욕적이고 반여성적’이라고 하였으며, 김병욱 의원은 ‘부정한 여인으로 낙인찍으려는 못된 의도’, 조은희 의원은 ‘유사 성희롱’, 김정재 의원은 ‘아프리카 봉사 활동을 한 오드리 헵번, 정우성은 포르노 배우냐’라며 반발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김영식 의원은 ‘그래도 대한민국의 국모’라는 구시대적 발언을 하였으며, 윤상현 의원은 ‘역대 영부인 중에 이렇게 미모가 아름다운 분이 있었냐’라는 성차별적 외모 평가까지 동원했다.

여당 의원들이 쏟아 낸 발언들은 논점과는 관계없이 포르노라는 단어의 선정성만을 트집 잡는, 수준 낮은 말싸움밖에 안 된다. 이러한 발언이 나오게 된 이유는 빈곤 포르노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으로 추측되는데, 정말 몰랐다면 무지성적 발언이고, 알고도 이런 발언을 했다면 반지성적 발언이다. 맥락을 삭제하고 포르노라는 단어에만 집착해 발끈한다면 논의는 소모적이고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뿐이다.

한편 대통령실은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을 형사 고발하였다. 그 이유는 장 위원의 ‘조명을 동원한 콘셉트 사진’이라는 발언에서 사진을 찍을 때 조명을 동원하지 않았는데 조명을 동원하였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익과 국민 권익이 침해당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핵심은 콘셉트 사진 촬영이므로 조명은 부수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엽적인 문제를 빌미로 야당 국회의원을 고발하는 것은 다른 의도를 가졌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또한 형사 고발 이유로 국익을 거론하는 것도 올바르지 않다. 최근 대통령실은 MBC의 보도를 문제 삼아 국익을 해친다며 MBC 기자를 대통령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한 바 있다. 대통령과 관련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국익을 침해한다며 언론, 야당 정치인 할 것 없이 모두 배제하고 또 고발한다면 누가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겠는가.

야당과 여당, 대통령실이 문제의 본질과는 관계없이 각자의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벌이는 작금의 공방은 가히 ‘정치 포르노’라고 할 만하다. 권위와 겁박, 이기적인 진영 논리, 비난과 선동, 혐오에 기반한 저급한 말싸움이 만들어 낸 정치 포르노를 보고 있자니 낯이 뜨겁다. 포르노라는 세 글자 뒤에 가려진 빈곤 문제와 아동 복지, 국익을 위한 외교 활동의 방향 등 본질적 문제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를 우리 정치권에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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