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위기에도 지역 공동체·전문 분야 파고든 미디어 실험 중 [新 문화지리지 2022 부산 재발견] 11.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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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문화지리지 2022 부산 재발견] 11. 부산의 미디어 생태계

온라인 플랫폼 홍수 속 오프라인 간행물 고군분투
영도·수영구 중심 구 단위 정기간행물 출간 활발
연극 비평·일러스트 비롯 내공 있는 전문 잡지도
지역 공동체라디오·온라인 방송 의미 있는 도전

연극비평지 ‘봄’의 한 코너인 ‘난상토론’을 위해 작업자, 연출가, 배우, 작가들이 지난 14일 부산 수영구 망미동 커뮤니티 공간 ‘플래그엠’에 모였다. 낭독 연극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은 토론이 이어졌고, 다음 ‘봄’에 실릴 예정이다. 연극비평지 ‘봄’의 한 코너인 ‘난상토론’을 위해 작업자, 연출가, 배우, 작가들이 지난 14일 부산 수영구 망미동 커뮤니티 공간 ‘플래그엠’에 모였다. 낭독 연극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은 토론이 이어졌고, 다음 ‘봄’에 실릴 예정이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가 무너지는 세상이다. 온갖 소식과 정보를 전하는 신문과 잡지, 그리고 방송 등은 갈수록 더 심한 격변기를 겪고 있다. 어제의 ‘뜨는 별’이 오늘 ‘지는 해’가 된다. 올드 미디어로 분류되는 부산의 정기간행물과 방송 역시 쓰나미처럼 덮치는 온라인 물결 속에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부산일보〉가 2009년 ‘신문화지리지-2009 부산 재발견’ 기획 연재를 게재했을 당시와 비교하면 천지개벽 수준이다.


■ 정기간행물은 ‘생존 투쟁’ 중

2017년 말 창간호를 낸 독립출판 계간지 ‘하트 인 부산’. 부산의 청년작가 모임 ‘글담’이 뜻을 모았다. 목표는 ‘부산을 대표하는 로컬 인문 매거진’이다. 부산 16개 구·군을 돌아가며 지역의 스토리와 사람들을 소개한다.

독립출판 ‘쓰담’ 장혜원 대표는 “부산 청년작가 8명이 지역 기록을 남겨서 부산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고, 사람들이 부산을 찾도록 만들자는 데 마음이 통했다”고 말했다.

5년간 부산 절반을 소개하며 쉼 없이 달려온 하트 인 부산은 올 7월 SNS를 통해 휴간 소식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장 대표 등은 공지 글에서 “잡지 수명의 최대 고비인 5년이라는 시간을 앞두고, 하트 인 부산 역시 당연한 수순을 밟게 되었다는 실망감을 드리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었다”면서도 “추후 멋지게 돌아오는 그날까지 각자 성장을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은 “퀄리티(질)를 유지하기에는 각자의 삶과 가정 또한 너무나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했다”며 “도전하는 청년들을 위해 현재의 지원 정책은 문턱과 장벽이 더 낮아져야 한다”고 고충를 밝히기도 했다.

부산 유일 연극비평지 ‘봄’은 2013년 1호가 탄생하며 지역 문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고사하는 지역 연극 비평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발행인인 진선미 배우 등 연극인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6개월에 한 번씩 발간하는 봄은 다음 달 19호가 세상에 나온다. 내년이 벌써 10주년이다.

진선미 발행인은 “예술단체를 제외하고 장르 한 분야로 정기간행물을 제대로 내는 건 문학 분야와 저희가 다인 것 같다”며 “지금 문화계 정기간행물은 사실 고사 직전이다.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간행물이 훨씬 많다”고 상황을 전했다.

출판업계는 이른바 ‘로컬 잡지’가 전체의 1%가 되지 않을 것이라 추정한다. 부산의 정기간행물도 경제·사회·문화 분야 기관이나 단체, 기업이 내는 예산의 힘으로 명맥을 잇는 것이 대부분이다.

■ 희망 싹트는 ‘로컬 간행물’

그래도 그간 영도구와 수영구 등지를 중심으로 구 단위 지역에서 정기간행물의 활발한 활동이 포착됐다.

영도구에서는 ‘비밀영도’가 매년 특별한 형태로 발간된다. 2017년부터 1년에 한 차례씩 나오다가 5권부터 특별판 형태로 바뀌었다. 올해도 특별판이 곧 나올 예정이다. 책을 내는 (사)삼진이음 홍순연 이사는 “국토부 중심시가지형 도시재생사업인 대통전수방 프로젝트로 처음 시작한 일이라 그만두기 아까워 계속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리 너머 영도’도 종이에서 온라인으로 전환해 생명을 이어간다. 영도 깡깡이예술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한 플랜비협동조합이 시작한 로컬 매거진인데, 문화체육관광부 문화도시 사업을 하는 영도문화도시센터가 2020년 12월 월 2회 온라인 웹진으로 전환했다. 올 9월까지 웹진 25호가 발간됐다.

고윤정 영도문화도시센터장은 “아카이브 성격이 강했던 ‘다리 너머 영도’를 온라인에서는 시민기자단 방식으로 바꿔 주민이 참여하는 로컬 문화 잡지가 됐다”고 말했다.

수영구에서도 F1963과 망미골목 등 새로운 독립문화 공간의 탄생에 힘입어 ‘수영성 마을잡지 푸조와 곰솔’, 무크지 ‘비클립(b-clip)’ 등이 출간되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도서출판 화심헌이 올 7월 내놓은 잡지 ‘드로우(DRAW)’ 창간특별호도 시선을 끈다. 전국을 겨냥한 전문 일러스트 잡지를 부산에서 기획해 내놓았는데, 펼쳐만 봐도 내공이 예사롭지 않다. 화심헌 오동규 대표는 “부산이라고 해서 불가능한 건 없다. 서울이 아니어도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이렇듯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지역의 의미를 찾아 나서거나, 전문 분야에서 도전을 지속하는 것 또한 2022년 부산의 모습이다.

■ 부산 정기간행물 들여다보니

2022년 11월 기준 부산 16개 구·군에 등록된 정기간행물은 모두 292개다. 일간지와 주간지, 온라인매체는 법에 따라 부산시가 따로 관리한다.

2009년 부산시와 각 구·군에 등록된 목록상 정기간행물은 229종이었던 데 비하면 숫자는 늘었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활동을 중단한 곳이 상당수인 것으로 파악된다.

구·군별로 보면, 해운대구가 45개로 가장 많은 정기간행물이 등록됐다. 등록 횟수만으로도 최근 해운대구의 활발한 경제·문화 활동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실제 2009년까지 9개에 불과하던 해운대구 신규 등록 정기간행물은 2015년 7건 이후 매년 늘어 2021년 6건, 올해 7건으로 큰 폭으로 늘었다.

이어 부산진구와 남구가 각각 31건이다. 부산진구에서는 서면과 인쇄골목 등지를 중심으로 움직임이 활발하고, 남구에는 부산예술회관과 부산문화재단, 부산문화회관 등 문화시설과 단체가 많다. 이어 동구 24개, 금정구 23개, 수영구·중구 22개, 연제구 20개, 사하구 14개, 동래구·기장군 13개 등의 순이다.

2009년 부산시에 등록된 일간지는 〈부산일보〉와 국제신문 2개사뿐이었다. 이후 2012년부터 1~2개사가 이름을 올리더니 2022년 17개사가 등록돼 있다. 경제, 복지 등 전문 분야를 대변하는 소규모 신문이다.

부산시에 등록된 주간지도 48개에 달한다. 2008년까지 9개, 2009년에는 14개이던 것이 매년 그 수를 늘렸다. 이 가운데 제대로 발행되거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주간지는 20개 남짓으로 추정된다.

이에 비해 올해까지 부산시에 등록된 온라인 매체는 241개로 가히 폭발적으로 늘었다. 2009년에 비해 20배나 급증한 수치다.

2007년까지만 해도 부산시에는 단 3개의 온라인매체가 등록됐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시작한 2020년 무려 39개 매체, 2021년에는 36개 매체가 ‘출생신고’를 했다.

부산시 대변인실 정현우 주무관은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년 5~6월에 등록번호를 받은 온라인매체들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온라인 공간에서도 매주 지역 인물의 인터뷰 스토리를 뉴스레터 형태로 업로드하는 ‘온라인 매거진 브릿지’와 같은 시도가 점점 활성화되고 있지만 현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 명맥 잇는 라디오…유선방송의 몰락

부산에서는 최근 첫 지역 공동체라디오인 ‘연제공동체라디오 연제FM’이 새로운 시작을 알려 주목 받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전국에 20개 소출력 지상파 공동체라디오에 허가를 내줬다. 2004년 도입한 공동체라디오 시범 사업 이후 부산 연제공동체라디오, 경남 남해공동체라디오 등이 허가를 받은 것이다.

지난 15일 ‘실용화 시범국’으로 시험 방송을 시작한 연제공동체라디오 연제FM은 내년 9월 정식 개국을 앞두고, 장애인과 다문화가족 등을 주제로 한 13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정경희 연제공동체라디오 이사장은 “올해 태풍이 부산에 영향을 미쳤을 때 연제FM이 주민을 위한 재난 방송을 하며 공동체라디오의 존재 가치를 증명했다”고 말했다.

이외에 부산의 지상파 방송과 라디오는 큰 변화가 없다. KBS 부산방송총국과 부산MBC, KNN까지 지상파 TV 3사와 부산CBS, 부산교통방송, 부산극동방송, 부산불교방송, 부산영어방송, 원불교 계열 원음방송, 부산가톨릭평화방송 등 7개 지상파 라디오다.

방송에 준하는 유튜브와 팟캐스트 플랫폼 인터넷 방송도 무서운 기세로 늘고 있다. 이들 역시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정욱교 ‘051FM’ 대표는 “사실 20~30대에게는 뉴미디어가 거의 전부다. 기성 방송의 영향력은 거의 미미하다”고 말했다.

한편 10여 년 전만해도 부산에는 여러 유선방송사업자(SO)들이 존재했지만, 2022년 부산에는 SK브로드밴드(옛 티브로드), LG헬로비전, 현대백화점 계열 HCN까지 단 3개의 대기업 계열 유선방송사만 남아 있다.

특별취재팀=박세익 기자 run@busan.com

사진=윤민호 yunmino@naver.com

그래픽=비온후 김철진 대표 beonwhobook@naver.com

부산일보사·부산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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