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가짜뉴스에 포획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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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원 폴리컴 대표

한나 아렌트는 1951년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전체주의 지배의 이상적인 대상은 확신에 찬 나치 당원이나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의 차이, 진짜와 가짜의 차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썼다. 진영화된 사회와 넘쳐 나는 정보 홍수 속에 사실 구분은 힘들어지고 진실 규명은 어려워졌다. 사실과 허구, 진짜와 가짜의 구분에 혼란을 겪는 국민은 목적을 가진 정치인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변호사 30여 명과 심야 술자리를 가졌다는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의 의혹 제기가 정국을 뒤흔들었다. 같은 당 장경태 의원도 인터넷의 글을 근거로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심장질환 환우의 집을 방문해 조명을 설치하고 홍보용 사진을 촬영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은 새해 예산안과 계류 중인 수백 건의 민생 법안은 뒷전인 채 지난 한 달간 소모적 ‘가짜뉴스’ 공방전을 벌였다.

최근 ‘청담동 술자리’ 가짜뉴스

한 달 만에 결국 거짓말로 판명

정치권, 악의적 목적 남발 우려

눈앞 이익에 매몰, 불신만 가중

민주주의 기반 송두리째 흔들

유권자·정치인 책임의식 필수

물론 과거에도 국회의원 중에는 면책특권에 기대 ‘묻지 마 폭로’를 한 의원이 있었다. 과거엔 주로 선거 과정에서 일부 정치인에 의해 이뤄졌지만, 지금은 아예 당과 지지자 전체가 동원된 전면전 양상이다. 일방적 뉴스 수용자이던 대중이 소셜미디어 시대를 맞아 능동적 뉴스 주체가 돼 자기 입맛에 맞는 뉴스를 적극적으로 유통하며 가짜뉴스 공방과 확산에 가담하고 있다.

‘청담동 술집’ 사태 한 달 만에 녹취음성 당사자가 경찰에서 거짓말을 실토했고, 김의겸 의원은 유감을 표명했다. 하지만 일부 지지자들은 여전히 이를 믿고 있고, 심지어 지식인들조차 의혹을 거두지 않고 있다. 현직 국회의원의 의혹 제기가 한 달간 꾸준히 뉴스를 통해 반복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한 번 제기된 의혹은 다른 이슈로 덮일 때까지 계속 위력을 발휘한다.

동일한 주장에 계속 노출돼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게 되는 현상을 ‘진실착각 효과’라 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 연구팀은 가짜뉴스가 진짜뉴스보다 리트윗될 확률이 70% 이상 높다고 밝혔다. 가짜뉴스가 훨씬 자극적이고 더 사실적으로 꾸며지기 때문이다. SNS의 확장성과 반복성이 진실착각 효과를 증가시켜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가짜뉴스는 진실의 가면을 쓰고 대중의 판단을 흐린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도 각종 가짜뉴스가 맹위를 떨쳤다. 같은 해 근거 없는 가짜뉴스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를 이끌었다. 트럼프의 승리와 영국의 EU 탈퇴가 가짜뉴스 때문이라는 과학적 통계는 없지만, 여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대체적인 중론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한 정치인의 가짜뉴스가 위험한 것은 메신저의 영향력, 매스미디어의 공신력, 소셜미디어의 확장성이 결합해 가공할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2년 전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가짜뉴스에 시정 명령을 내릴 수 있게 하고, 불응할 때 벌금을 물리는 ‘언론개혁법안’과 인터넷 사용자의 가짜뉴스 생산 유통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가하는 ‘정보통신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한발 물러났었다. 가짜뉴스의 폐해와 실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청와대 대변인 출신 국회의원이 기본 사실 확인조차 되지 않은 사안을 국감장에서 제기한 건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현실 속에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에 제한을 두는 순간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찮다. 권력이 규제를 통해 언론에 재갈 물리고 시민통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가짜뉴스 방지의 뚜렷한 제도적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치권이 근거가 희박한 가짜뉴스 생산에 앞장서는 건 매우 우려스럽다. 정치인의 거짓말은 일상적이다. 절반도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는 게 정치인이고, 이는 유권자도 가려서 판단한다. 하지만 상대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는 검증이 안 된 무책임한 악의적 가짜뉴스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악의적 가짜뉴스는 당장 눈앞의 이익이 있을지는 몰라도 정치 자체에 대한 불신을 가중한다.

민주주의에서 유권자는 언론이나 SNS 등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받아들여 선택의 판단 근거로 삼는다. 악의적 가짜뉴스는 유권자의 판단을 흐려 제대로 된 선택을 그르치게 한다. 가짜뉴스는 게으르고 무능한 정치나 통치 권력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유권자도 함부로 뉴스를 퍼다 나르지 않는 자제력과 비판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 여야를 떠나 정치인은 국민과 국가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으로 가짜 뉴스와 결코 타협해선 안 된다. 가짜뉴스는 정치의 근간과 민주주의의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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