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사 대표 복천박물관, 낡고 퇴색한 ‘20세기 박물관’ 전락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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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개관 이후 거의 리모델링을 하지 않은, 어두침침한 복천박물관 전시실 모습. 보온 방습이 안 되는 진열장 안에서 유물 부식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한다. 복천박물관 제공 1996년 개관 이후 거의 리모델링을 하지 않은, 어두침침한 복천박물관 전시실 모습. 보온 방습이 안 되는 진열장 안에서 유물 부식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한다. 복천박물관 제공

가야사의 핵심적인 대표 박물관으로 손꼽히던 복천박물관 전시장에 들어서면 낡고 퇴색한 느낌이 완연하다. 전시실도 어두침침하다. 조명을 밝힌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준이 아니다. 진열장 자체가 너무 낡았기 때문이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유물의 색감을 원형에 가깝게 감상할 수 있게끔 저반사 유리와 LED 조명을 도입하고, 나아가 면진시스템까지 구비하는 동시대 박물관 수준과 전혀 동떨어져 있는 것이 복천박물관 전시의 현주소다. 한마디로 너무 낡은 옛날식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가야사 핵심적 박물관에서

가장 뒤떨어진 박물관으로 퇴색


세계유산 등재 신청 탈락

주변 대대적 재개발 진행 속 방치


지역사 자긍심 회복 위해

전시장 리모델링 추진 시급


보온 방습도 제대로 안 되는 ‘고물 진열장’ 때문에 다른 박물관에서 중요 유물을 안 빌려주는 곳으로까지 전락했다. 한 예로 A박물관에서 대여해서 전시 중인 철기 유물은 낡은 진열장 안에서 너무 많이 부식돼버렸다. A박물관 관계자가 부식된 그 유물을 보고 “우리 소중한 유물을 이 따위 취급하려면 당장 돌려달라”고 항의했다고 한다.

복천박물관이 가장 낡고 퇴색한 가야사 박물관으로 전락하고 있다. 통상 박물관은 7~10년 주기로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전시를 혁신하지만 복천박물관은 26년 전 개관 당시 전시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996년 개관 이후 ‘낡은 20세기 박물관’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셈이다.

숫제 복천박물관은 ‘구석’에 처박아 놓은 양상이다. 2009~2010년 손을 본 적은 있지만 그것은 제대로 한 것이 아니다. 당시 총 5억 원을 들여 2~3층 전시장 유물 구성과, 1층 로비와 문화사랑방, 전시장 진입·관람 동선을 약간 바꿨을 뿐이다. 그 정도 예산은 리모델링이 아니라 특별기획전 1회 예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부산박물관은 2002년, 2014년, 2017년에 걸쳐 리모델링을 했다. 최정혜 복천박물관장은 “부산박물관 전시실 개편과 관련해 2002년 76억 원, 2017년 67억 원이 들었다”며 “복천박물관 리모델링을 제대로 하려면 그 이상의 예산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가야 신라 권역의 국립박물관도 꾸준히 전시실 리모델링을 하고 있다. 국립김해박물관은 1998년 개관 이후 2014년과 2022년에 걸쳐 리모델링했다. 각 28억 원의 예산을 들여 2014년에는 1~2층 전시실, 2022년에는 2층 전시실과 중앙홀을 리모델링했다. 황은순 국립김해박물관 학예실장은 “기본시설의 리모델링도 필요하지만 영상물을 도입하는 콘텐츠 투자 예산이 충분해야 전시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국립경주박물관도 2018~2020년 상설전시를 하는 신라역사관을 17억 3400만 원을 들여 리모델링했다. 한국 고유의 미학을 적용한 호텔 로비 같은 중앙 현관에 들어서면 관람객들이 감탄사를 쏟아낼 정도라고 한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올해 별관인 ‘신라미술관’ 불교조각실도 8억 8000만 원을 들여 리모델링 공사 중이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가야사 박물관 중에서 복천박물관은 가장 앞섰으나 현재는 가장 뒤떨어지는 박물관으로 전락하고 있다. 아라가야 함안박물관은 2003년 개관해 2007년 전시시설 확대 리모델링했으며 2022년 다시 전면 리모델링 개관했다. 지난해 말이산고분전시관을 따로 개관했으며, 2023년 개관 목표로 현재 제2전시관을 건축 중이다. 금관가야 대성동고분박물관도 2003년 개관 이후 2009년 리모델링과 동시에 박물관을 증축했으며, 2017년에 또다시 박물관을 리모델링했다. 이 같은 사정은 고령의 대가야박물관, 소가야 고성박물관, 비화가야 창녕박물관, 다라국 합천박물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각 지자체가 그 지역 정체성과 연관해 가야사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복천박물관은 국가사적 복천동고분군과 함께하는 선진적 박물관으로 주목을 끌었다. 가야사 관련 각종 특별전으로 명성을 쌓아왔으나 그 모든 것이 퇴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시의 무관심으로 복천동고분군과 복천박물관에 대한 홀대는 끊임없이 진행돼 왔다. 2018년 가야사 유적 발굴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복천동고분군은 세계유산 등재 추진 가야고분군에서 아예 빠져버렸다. 일대에 대대적인 아파트 재개발 추진 때문이었다. 부산시가 뒷짐을 지고 있는 가운데 설상가상 숱한 논란 속에서도 일대 재개발은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김재홍 국민대 한국역사학과 교수는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 고고학이 걸어온 길이 복천동에 다 있다”며 “처음에는 국립기관보다 더 잘 만들어진 곳으로 복천박물관을 꼽았는데 부산시가 이렇게 방치하고 있는 것을 보면 충격적이다”라고 했다. 그는 “고분군이 등재 신청 목록에서 빠져도, 그 주변에 아파트 재개발이 진행돼도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하는 것이 지역사에 대한 ‘진정성’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복천박물관은 가야사 연구의 주도적 기관으로 이전에 학예연구사가 6명이었으나 현재는 4명이며, 직접 유적 발굴에도 나섰으나 지금은 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위축된 복천박물관 위상을 조금이나마 회복하기 위해서 박물관 리모델링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위축된 복천박물관 위상을 조금이나마 회복하기 위해서 박물관 리모델링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복천박물관 전경. 부산일보DB 위축된 복천박물관 위상을 조금이나마 회복하기 위해서 박물관 리모델링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복천박물관 전경. 부산일보DB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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