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 품은 고분 위로 오늘 하루 더해진다…경북 의성 시간 여행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삼한 조문국 370여 기 고분들
사이 길 걷고 언덕 넘나들며
올 한 해 갈무리 해 본다

신비한 전설 서린 경덕왕릉
고분 전시관 돌아보며
화려한 시절 떠올린다

놀이터 같은 체험실, 열린 수장고
박물관도 보고
신라탑, 공룡 발자국까지
꽉 찬 하루가 저문다

경북 의성군 금성면 금성산 고분군은 삼한시대 초기 부족국가였던 ‘조문국’의 흔적이다. 봉긋 솟아오른 고분군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사색을 즐기기에 좋다. 경북 의성군 금성면 금성산 고분군은 삼한시대 초기 부족국가였던 ‘조문국’의 흔적이다. 봉긋 솟아오른 고분군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사색을 즐기기에 좋다.

한 해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 지나온 시간과 다가올 시간을 조용히 생각해 볼 시기다. 시간의 의미를 짚을 수 있는 한적한 곳에서 사색에 빠진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오래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경북 의성군으로 시간 여행을 떠났다.



■삼한 시대 부족국가 ‘조문국’을 아시나요

‘여기가 경주가 아니라 의성이라고?’ 의성 하면 떠오르는 것은 마늘과 컬링뿐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본 ‘고분군’ 사진이 의성으로 발길을 향하게 했다. 의성에 대해 찾다 보면 많이 만나는 단어 중 하나가 ‘조문국’이다. 봉긋봉긋 솟은 고분군 역시 조문국의 흔적이다.

조문국은 삼한 시대 초기 부족국가였던 나라로, 의성군 금성면 일대가 도읍지였다. 신라 벌휴왕 2년인 185년에 신라에 병합됐다고 전한다. 〈삼국사기〉에 ‘185년 2월에 파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혜를 좌우 군주로 삼아 조문국을 벌하였는데 군주(軍主)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다’라는 내용에서 조문국이 등장한다.

금성산 고분군 주차장에서 내려다보면 너른 고분군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름 15~19m의 대형 분부터 지름 10m 미만의 소형 분까지 370여 기가 흩어져 있다. 이 고분군은 5~6세기경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여름 잔디가 푸르렀을 땐 그것대로의 멋이 있었겠지만, 초겨울 갈색으로 물든 풍경도 고분군 분위기에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고분군을 천천히 돌아봤다. 금성산 고분군은 예쁜 길로도 유명하다. 고분 사이로 쭉 뻗은 길부터 부드럽게 굽이진 길, 구름과 가까워지는 언덕길까지. 조용히 사색을 즐기는 이에게도, SNS 인증사진을 즐기는 이에게도 인기 있는 포인트이다. 언덕 위에 오르자 아래를 바라보도록 작은 의자 네 개가 놓여 있다. 잠깐 앉아 생각에 잠기기에 좋다. 한 시대가 저문 흔적 위에서 저무는 한 해를 뒤돌아본다.

금성산 고분군에는 주인이 알려진 고분이 하나 있다. 바로 경덕왕릉이다. 경덕왕릉에는 전설이 전해진다. 조문마을의 북쪽에 옛 무덤이 첩첩이 쌓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중 가장 큰 무덤을 몇 번이나 몰래 파헤쳐 보려 했다. 이웃에 사는 오극겸이 이것을 보고 놀라 꾸짖고 무덤을 보수했다. 그날 밤 오극겸의 꿈에 의복 치장이 매우 이상한 사람이 시 한 구절을 일러 줬다. ‘문소고을 과거사를 누구와 의논하랴/천년이 지난 오늘 경덕분만 남았도다/비봉곡조 없어지고 사람도 볼 수 없고/조문의 거문고 가 버린 지금 그 소리도 모연하다 하였다.’ 이 전설은 조선 영조 때 전국의 읍지를 엮어 편찬한 〈여지도서〉에 기록돼 있다.

경덕왕릉 앞에는 봉분 모양을 한 조문국 고분전시관이 있다. 대리리 2호분이 있던 자리로, 발굴을 끝낸 후에 무덤 내부를 보여주기 위해 전시관을 지었다. 금성면 고분군의 형성 과정과 순장 등 당시의 매장 풍습을 자세히 알 수 있다.

초겨울 고분군의 풍경은 소박하지만, 5월의 풍경은 조문국의 옛 시절처럼 화려하다. 붉은 작약으로 뒤덮인 봄날이 궁금해진다.


[출고복사] 고분군전시관 [출고복사] 고분군전시관
경북 의성에서는 삼한시대, 통일신라시대, 중생대 백악기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위쪽부터 금성산 고분군의 조문국 고분전시관,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의성조문국박물관의 열린 수장고. 경북 의성에서는 삼한시대, 통일신라시대, 중생대 백악기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위쪽부터 금성산 고분군의 조문국 고분전시관,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의성조문국박물관의 열린 수장고.

■통일신라 석탑과 1억 5000만 년 전 공룡 발자국

‘의성조문국박물관’은 고분군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박물관 1층의 아이들 놀이공간인 상상놀이터에 먼저 눈길이 간다. 발굴 체험 등 역사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을 찾는 아이들은 박물관을 지루한 곳이 아닌 재미있는 곳으로 받아들이겠구나 싶다. 박물관에 생기가 넘치는 듯하다.

조문국박물관에서는 다양한 유물을 볼 수 있다. 선사시대부터 삼한시대와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의성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펼쳐진다. 금성산 고분군은 1960년대부터 발굴이 이뤄졌고 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금동관, 은제 관장식, 환두대도, 금동 귀걸이, 의성 양식 토기 등 대부분 5~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리 1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띠 모양의 테두리 위에 가장자리를 가늘게 꼬아서 새 깃털 모양으로 만든 장식을 붙였다. 신라의 금관과는 다른 모습이라 특이하다.

박물관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곳은 ‘열린 수장고’이다. 금성면 출신인 박찬 변호사가 기증한 유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 수장고는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라 어떻게 유물을 보관하는지 늘 궁금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박물관 유물이 어떻게 잠들어 있는지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다.

금성면 고분군 인근에는 함께 둘러볼 만한 시간 여행 장소가 있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을 보러 가는 길에는 1980년대를 먼저 만난다. ‘레트로’ 감성이 물씬 나도록 정비한 거리의 간판이 정겹다. 오층석탑은 탑리여자중학교 운동장에 있다. 통일신라 전기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국보’이다. 탑 주변에 소나무 세 그루가 그림처럼 어우러져 있다. 색 바랜 석탑 주변만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순식간에 마음을 뺏긴다.

석탑 1층 몸돌에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이 있지만 비어 있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전탑 양식과 목조 건축의 수법을 동시에 보여 주고 있어,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전기의 석탑 양식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석탑 옆 잔디밭에는 오층석탑의 교체 부재가 전시돼 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이뤄진 보수공사에서 나온 부재들이다. 탑의 어느 위치에 있던 것이었는지 그림과 함께 설명해 놓아 이해가 쉽다.

의성 여행의 마지막은 더 먼 옛날, 1억 5000만 년 전으로 떠나는 시간이다. ‘의성 제오리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에는 384개의 공룡 발자국이 남아 있다. 공룡 관련으로는 최초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주로 바닷가에서 많이 봤던 공룡 발자국을 내륙의 도로를 달리다가 맞닥뜨리니 색다르다. 1987년 지방도로 확장공사 중에 산허리 부분의 흙을 깎아낼 때 발견했다고 한다. 중생대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 발자국으로 추정되며, 초식 공룡과 육식 공룡의 발자국이 함께 찍혀 있다. 무수히 많은 공룡 발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가까이서 보는 것보다 길 건너편에서 보면 발자국이 더 잘 보인다.


▶여행 팁 : 의성조문국박물관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이며,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은 휴관이다. 박물관 상설전시실, 민속유물전시관, 열린 수장고, 고분 전시관 관람은 무료다. 상상놀이터는 유료로 운영하고 있다. 월요일은 문을 닫는다. 이용료는 만 2세~만 9세 미만은 2000원, 만 9세 이상은 1000원.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은 탑리여중 운동장에 있지만 입구는 별도로 있다. 교정으로 들어가면 울타리에 막혀 가까이에서 볼 수 없다.

글·사진=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