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중국 시위대의 절박한 호소 “한국인도 A4용지를 들어주세요”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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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1000명 참여 중국인 메신저 대화 그룹 접촉
참여자들 “공산당, 아파트 화재 감추려고 언론 통제”
봉쇄 해제 넘어 민주주의 요구…한국 동참 호소도

지난달 28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시위 모습. 시위 참가자 제공 지난달 28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시위 모습. 시위 참가자 제공

“한국인의 연대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중국 방역당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항의해 중국 내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백지시위’(부산일보 11월 30일 자 12면 등 보도)는 궁극적으로 코로나 규제 해제를 넘어 중국 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운동이었다. <부산일보>는 글로벌 메신저를 통해 다수의 시위 참가자들과 접촉해 이 같은 중국 내 분위기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공안당국의 강경 진압으로 현지 시위가 주춤해진 상황이지만 시위 참가자들은 이웃 한국의 연대를 요청하며 싸움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취재진은 지난달 30일 중국에서 ‘백지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이 글로벌 메신저를 활용해 결성한 단체 대화 그룹에서 일부 중국인을 접촉했다. 이 그룹은 중국인 1000여 명이 자발적으로 결성해 활동하고 있는 온라인 단체로 파악된다. 그룹에는 수도 베이징과 상하이는 물론 홍콩 출신자도 참여하고 있었으며 서로 시위 활동 계획과 의견을 나누며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었다. 이들의 안전을 위해 메신저와 인터뷰 대상자 이름을 비공개 처리했다.

해당 메신저에 첫 접속하자마자 평화시위를 당부하는 주의사항 게시글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시위대 안전을 염두에 둔 집회 행동 요령도 상세히 알리고 있었다.

‘경고: 누구든지 먼저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든지 주동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경찰을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필요한 때 스스로 지켜야하겠지만, 우리가 경찰과 싸우는 것은 승산이 없습니다.’ ‘만약 대열에서 이탈하면 즉시 옮겨가든지, 아니면 함께 떠나든지 하시고, 홀로서기를 하지 마십시오. 모두들 행운을 빌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한 시민의 체포 소식도 전해졌다. ‘2022년 11월 30일 상하이 난징시로 부근. 리 모 씨 체포·휴대전화 연락 두절’


중국 한 도시의 지하철 전동차에서 경찰이 시민들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다. 온라인 그룹 캡처 중국 한 도시의 지하철 전동차에서 경찰이 시민들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다. 온라인 그룹 캡처

지난달 25일부터 상하이와 베이징, 광저우, 우한, 난징, 청두 등 중국 16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시위 이후 중국 공안당국은 시위가 이뤄질만한 곳곳에 경찰을 배치했다. 온라인 그룹에는 경찰이 지하철 전동차에서 시민들의 휴대전화를 수색하는 동영상도 올라와 있었다. 실제 중국 내에서 시위가 다소 소강 상태라고 얘기하는 회원 대화 내용도 눈에 띄었다.

자신을 상하이의 자영업자로 소개한 A(30) 씨는 “정부가 시위 진압 인력을 보강하고 있다. 오늘 지하철역에도 많은 경찰들이 몰려 있었다”며 “무장 경찰들이 수시로 순찰 중이고, 상하이 도로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순찰차가 많다”고 말했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B(40) 씨는 “지난달 27일 시위에서 외국 대사관들이 있는 차오양구 도로변은 시위대보다 경찰이 더 많았고, 경찰이 여전히 이 일대를 봉쇄 중이다”며 “베이징의 날씨가 영하 6도까지 떨어지고 강한 바람에 체감온도는 영하 17도까지 곤두박질치면서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위를 이어나가려는 그의 의지는 결연했다. B 씨는 “최근에 별도의 온라인 그룹을 만들었는데, 어떻게 하면 이 운동을 계속 유지시켜 나갈지 계획을 수립 중이다”고 강조했다. 홍콩의 전문직 종사자 C(33) 씨는 “홍콩의 시위는 본토보다 크지는 않고, 2020년 제정된 홍콩의 국가보안법 때문에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다”며 “홍콩과 본토의 선전 사이 국경은 이미 폐쇄됐는데, 중국 입국을 위해서는 오랜 검역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봉쇄 해제를 요구하는 글들이 동상에 부착돼 있다. 시위 참가자 제공 코로나19 봉쇄 해제를 요구하는 글들이 동상에 부착돼 있다. 시위 참가자 제공

그들은 이번 시위의 도화선이 된 방역당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과 지난달 24일 발생한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와 관련 중국 정부를 일제히 비판했다. “시민들을 코로나19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어느 정도 봉쇄의 필요성은 없었나”는 취재진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상하이 시민 D(30) 씨는 “한국에서도 이런 식으로 코로나19에 대응했나”며 반문했다.

D 씨는 “현재 중국 내 코로나19 사망자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방역을 이유로 사람들을 지나치게 억압하고 있다”며 “우루무치 참사도 봉쇄전략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중국인의 80%는 우루무치 화재와 대규모 시위를 모른 채 살아간다”고 덧붙였다.

A 씨는 “방역당국의 코로나19 봉쇄 때문에 손님들도 다 끊겼다”며 “수 년간 운영했던 점포도 어려워져 최근에 문을 닫았다”고 토로했다. 자신을 상하이의 고등학생으로 소개한 E(17) 군은 “중국은 마치 국제적인 흐름에서 탈선한 것 같다”면서 “우리는 더이상 국제적인 경기나 행사를 중국에서 볼 수 없고, 적당한 이유를 대지 못하면 외국에 나가는 것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중국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는 시위대. 시위 참가자 제공 중국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는 시위대. 시위 참가자 제공

인터뷰에 응한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깨어나고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단순히 가혹한 코로나19 규제 해제를 넘어서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원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A 씨는 “이번 싸움에서 표현의 자유를 반드시 쟁취하길 원한다”고 대답했다. B 씨는 “중국의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의견이 저마다 달랐다. 일부는 공산당을 반대하고, 일부는 공산당이 민주주의를 채택할 것으로 희망했다”면서도 “사람들이 용감하게 말할 수 있는 한 어떤 의견이라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한국인들도 중국 시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연대해줄 것을 한목소리로 부탁하기도 했다. E 군은 말했다. “한국에서도 현재 중국 사태에서 시민들을 지지하는 평화 시위를 개최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B 씨도 거들었다. “한국인들도 저희처럼 A4 용지를 들고 서 있기만 해도 힘이 날 것 같습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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