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아무도 기적을 말하지 않았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지율(1973~)

누군가 삽을 들고 목련나무 아래 서 있었다

어디에도 닿지 않은 채 사라진 마음은

유언일까 선언일까

푸른 돌멩이를 오래 쥐고 있으면

오래전 누군가 내 무덤 위를 막 지나간 것처럼

바닥은 조금 더 깊어졌고

밖에 누구 없나요

방 안에는 하루 종일 불이 켜져 있었다

- 시집 〈우리는 날마다 더 아름다워져야 한다〉(2022) 중에서


한 사람이 삽을 들고 목련나무 아래 서 있다. 바닥을 조금 더 깊게 파려나 보다. 방 안에는 하루 종일 불이 켜져 있고 시인은 어디에도 닿지 못한 사라진 마음을 생각한다. 혼자 있는 고요한 풍경 한 컷에다 시인은 ‘아무도 기적을 말하지 않았다’는 제목을 붙인다. 이 언술은 바깥의 상황이고 시인은 안에 있다. 필자도 한때 기적은 누워있는 게 틀림없어서, 일어나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기적은 어디에서 일어날까. 시인의 바깥 세계에선 아무도 기적을 말하지 않으니, 어쩌면 사람들은 기적을 말하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뒤늦게 알아차리는 어떤 기척 같은 것으로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성윤석 시인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