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학 최고 권위자’ 김준오를 조명하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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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학의 최고 권위자였던 고 김준오 전 부산대 교수. 부산일보DB 현대시학의 최고 권위자였던 고 김준오 전 부산대 교수. 부산일보DB

제12회 김준오 시학상 시상식

10일 세미나도 함께 열려 주목

역대 수상자 3인 발제자 참여


“우리 시 통해 시론 모범 제시”

“깊이 상실한 허무주의 비판”


김준오(1939~1999) 시학이 진화하고 있다. 매년 열리는 김준오 시학상 시상식이 처음으로 세미나를 겸해서 열린다. 10일 오후 2시 부산일보사 10층 소강당에서 열리는 ‘제12회 김준오시학상 세미나 및 시상식’이 그것이다. 시상식에서 김준오 시학에 대한 강연이 간혹 이뤄지기도 했으나 이렇게 세미나가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한국 현대시학의 최고 권위자’라는 김준오의 자리가 조금 더 드러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통상 부산이 ‘비평의 도시’로 일컬어질 때 <오늘의문예비평>이 언급됐고, 역사를 거슬러 한국전쟁기 고석규가 소환되지만 김준오 전 부산대 교수의 위상이 환히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김준오 시학은 ‘한 맥락으로 엮어내기 어려운 극점들을 통섭하려는 노력’으로 ‘야심찬 미적 사유의 횡단’을 보여준다. 이런 평론가, 연구자가 부산에 있었다는 것이 새삼스러운 역사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김준오 시학의 지평’이란 이름의 이날 세미나는 3건의 발제로 이뤄진다. 발제자 3명 모두가 김준오시학상 수상자라는 점이 무엇보다 각별하다.



김준오 교수 <시론> 표지. 김준오 교수 <시론> 표지.

김준오 교수 유고집 <현대시의 방법론과 모더니티> 표지. 김준오 교수 유고집 <현대시의 방법론과 모더니티> 표지.

김준오 교수 유고집 <현대시와 장르 비평> 표지. 김준오 교수 유고집 <현대시와 장르 비평> 표지.

제10회 수상자 조영복 광운대 교수는 ‘‘김준오’라는 시학과 인간론 ‘사이’’라는 발제를 통해 “서구의 릴케 예이츠 등을 인용하거나 빌려올 것 없이 그는 우리 시를 통해 시론 시학 시양식론을 깊이 있게 공부하는 모범을 제시했다”며 “세련된 언어로 한국문학 텍스트를 해석학의 선반 위에 올려 ‘한국문학의 초라함’과 ‘서구문학의 위대함’이라는 열등한 이분법을 지우고 해체했다”고 말한다. 김준오 시학은 서구 보편주의의 무게감을 떨쳐내는 대신 우리말 문장으로 학문하기의 무게감을 능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후 20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그의 글들은 여전한 깊이와 세련성으로 매혹적인 학문의 향훈을 남긴다고 한다.

조 교수는 “김준오 글의 각주란은 서구이론의 광범한 읽기와 선학·동료 연구자의 연구 성과에 대한 세세한 인용으로 가득 차 있다”며 “자료의 광대한 인용과 문장의 질서정연함은 그의 인간적 품성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고 한다. 몇 차례에 걸쳐 수정 증보한 그의 기념비적 저작 <시론>은 학문적 성실성과 인간적 유연성을 단적으로 증거하는 것인데 “좋은 인간이 좋은 시론을 남긴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증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1회 김준오시학상 수상자였던 고 이승훈 시인은 “김준오가 우리 시의 후기현대성을 밝히면서 누구보다 앞서, 그리고 깊이 있게 패러디 기법을 강조한 것은 우리 현대 시론의 사적 전개에 그가 남긴 가장 큰 업적”이라고 했다.

제9회 수상자 엄경희 숭실대 교수는 이승훈의 통찰을 이어받아 ‘담론의 관점 생성이라는 난제’를 발제한다. 엄 교수는 “김준오의 창의적 안목은 패러디에 주목했다는 것”이라며 “해체시 패러디시 메타시 환유시 등의 출현은 문학사의 고갈이나 퇴폐의 징후가 아니라 문학사의 의미심장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 김준오의 일관된 생각”이라고 했다. 김준오는 패러디를 통해 “목적론적 세계관에 토대를 둔 유기적 형식의 붕괴”을 읽어냈다는 것이다. 김준오는 시를 통해 우리가 ‘다른 세계와 세계관’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밝혔다는 것이다.

제6회 수상자 김진희 이화여대 교수는 발제 ‘문학사의 지평과 서정의 시대성’을 통해 “1980년대 해체시는 정치적 억압 체제 하에서 탄생했다”며 “김준오는 깊이를 상실하고 표피성만 남는 투명한 허무주의를 비판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김준오는 작품에서 궁극적으로 탐구해야 하는 것은 인간적 가치라고 봤다”며 “(그의 중요한 면모의 하나가) 문학의 인간적 가치를 수립한 ‘의식 비평’”이라고 말한다.

“이 삭막한 시대에 스승을 생각하는 제자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새삼 느끼게 해준 김준오시학상 운영위에 깊이 감사드린다.” 이번 제12회 수상자 이재복 한양대 교수의 수상 소감이다. 제자들의 아름다운 마음에 의해 김준오 시학은 더욱 진화해나갈 것이다. 세미나, 시상식과 관련한 모든 글은 계간 <신생> 겨울호에 게재된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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