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88. 아쉬워라 표준사전(22)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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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팀장

손님이 줄을 서는 식당과 그러지 않는 식당의 차이는 따지고 보면 그리 크지 않다. 음식이나 접객 태도, 홍보 방법이 아주 약간 다를 뿐이지만 줄을 세우고 세우지 못하는 차이가 나는 것. 요즘은 흔히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던데, 어쨌거나 조금만 신경을 쓰면 결과에서 큰 차이를 낼 수 있는 분야가 많다. 국어사전으로 좁혀 보자면,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은 어떤 집일까. 과연 줄을 세우는 맛집일까. 먼저, 아래 올림말(표제어)을 보자.

*초사하다(焦思하다): 애를 태우며 생각하다.(숨 거두고 나면 그뿐이라. 그저 흙덩이 부수어지듯 먼지로 흩어지고 마는 것을. 그래도 살았다고 노심하고 초사하며….〈최명희, 혼불〉)

보기글에 나온 ‘부수어지듯’이 바로 맛집 걸림돌이라 할 만하다. ‘부수어지다’라는 우리말은 없기 때문이다. 아래는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국어생활종합상담실 ‘온라인가나다’에 올라 있는 문답.

[질문]‘부서지다’는 ‘부수다’에서 나온 건가요? 왜 ‘부숴지다(부수어지다)’가 아닌가요?

[답변]‘부서지다’는 ‘부수다’의 고어형 ‘브즈다’의 어간에 ‘-어지다’가 결합해 오래전부터 자동사로 굳어진 말입니다. 따라서 현대어 ‘부수다’의 어간에 ‘-어지다’를 붙여 줄여 쓴 말 ‘부숴지다’는 표준어가 아닙니다.(2019. 12. 6.)

즉, 같은 뜻으로 쓰는 ‘부서지다’가 이미 있으니 굳이 ‘부숴지다’를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래 놓고는 ‘초사하다’ 보기글에는 저렇게 ‘부수어지듯’이라고 쓴 것. 사실 이 ‘부수어지듯’은, 국립국어원이 꼼꼼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표준사전 올림말 ‘파괴되다’의 뜻풀이 ‘부수어지거나 깨뜨려져 헐리다’를 국립국어원이 ‘부서지거나 깨뜨려져 헐리다’로 고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저걸 고치면서 이 ‘부수어지듯’은 빠뜨렸던 것.

*스리피트라인(three-feet line): 야구에서, 본루와 일루 사이의 베이스라인에서 3피트 바깥쪽에 그은 선. 타자가 일루로 갈 때 이 선을 넘으면 아웃이 된다.

이 뜻풀이에서는 타자가 아웃이 되는 전제가 빠졌다. 스리피트라인을 벗어난다고 모든 타자가 아웃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태그를 피해서 스리피트라인을 벗어나는 상황에서만 아웃이 되므로 ‘태그당하지 않으려고’라는 설명이 더 있어야 했다.

*묵나물: 뜯어 두었다가 이듬해 봄에 먹는 산나물.(아주까리나 취의 이파리는 묵나물로 먹는다.)

‘산나물’만을 묵나물이라 한 건 잘못. ‘나물’이면 된다. 당장 보기글에 나온 아주까리도 집에서 키운다.

자, 표준사전은, 줄을 세우는 맛집인가.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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