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에 고개 숙인 판사, 10년 연속 ‘우수 법관’ 뽑혀…부산고법 행정2부 김문관 부장판사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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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사건’ 재심청구인에 사과
‘짜증 금지’ 메모 붙인 채 재판해
판례 연구·지역 애착도 남달라
“끊임없이 공부해야 제대로 역할”

10년 연속 ‘우수 법관’에 선정된 부산고법 행정2부 김문관 부장판사가 8일 오후 인터뷰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10년 연속 ‘우수 법관’에 선정된 부산고법 행정2부 김문관 부장판사가 8일 오후 인터뷰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재판부는 재심청구인들과 그 가족에게 ‘늦어진 응답’에 사과의 마음을 전합니다. 법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이 사건의 여러 의미를 가슴에 깊이 새기겠다는 말씀도 드립니다.”

2020년 1월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재판을 맡았던 부산고법 김문관(58) 부장판사는 재심개시 결정을 내리면서 이 같이 밝혔다. 재심개시 결정 주문을 읽은 김 판사는 곧장 일어나 피해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재판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김 판사는 “재심청구인이 ‘21년을 복역하고 나오니 두 돌이던 딸이 24세가 돼 있었고, 손녀를 보듬자 딸을 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말할 때 그들의 고통을 극히 일부나마 느꼈다”며 “적극적으로 재심 사유를 인정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건”이라고 되짚었다.

재심 결정을 이끌었던 김 판사는 전국 각 지방변호사회가 실시해온 법관 평가 제도에서 10년 연속 ‘우수 법관’으로 선정됐다. 2008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에서 10년 연속 선정된 판사는 부산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김 판사가 유일하다.

김 판사는 2009년 부장판사로 부임하면서부터 재판대 앞에 ‘짜증 금지’ 네 글자를 붙여놓고 재판에 임하는 판사로 유명하다. 법관들에게는 일상과도 같은 재판 업무지만, 송사에 휘말린 당사자들에게는 일생일대의 중대사이기에 김 판사는 항상 신중을 기한다.

김 판사는 “친절하고 부드럽게 재판을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재판 자체에 집중하고자 한다”며 “선입견을 배제한 채 당사자들의 주장을 경청하면서 핵심 쟁점이 법정에서 잘 드러나도록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온화한 인상의 김 판사지만 판결은 법과 원칙에 따라 누구보다 엄정하다. 김 판사는 2014년 동부지청 형사부에 근무하며 당시 지역사회를 흔들었던 원전비리 사건의 핵심 피고인인 한수원 간부에게 검찰 구형량보다 훨씬 많은 징역 15년의 법정 최고형을 선고했다.

김 판사는 “당시 원전비리 사안으로 마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처럼 사건이 몰리다 보니 재판 진행하는 판사 3명이 번갈아가며 병원에 갈 정도였다”며 “거물급 피고인들이 대형 로펌 변호사를 선임하며 법리를 하나하나 다투다 보니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부산 배정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23기를 수석으로 마친 김 판사는 지역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다. 지역 법관으로 지원해 오랜 세월 부산지역 법원에서 업무를 봐 왔고, 지역 법조계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스스로도 많은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특히 7년 전부터는 2~3년차 젊은 법관 위주로 10여 명을 모아 판례 스터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오고 있다. 김 판사는 “내년이면 판사 생활도 30년차를 맞이하지만, 끊임없이 공부해야 제대로 된 판사 역할을 할 수 있다”며 “판사는 매주 숙명처럼 다가오는 재판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고 버거워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올바른 재판을 할 수 있는 역량과 신뢰를 갖춘 법관이 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깨닫고 있다”며 “후배 법관들은 국민이 만족할 수 있는 법관을 목표로 정진한다면 힘들지만 직업적 만족감을 채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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