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유튜브와 백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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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대 민석교양대학 교수·미술평론가

올해는 백남준 작가 탄생 90주년이 되는 해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백남준 작가와 관련된 행사들이 열리기도 했다. ‘백남준’이라는 이름은 미술에 별로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익숙하다. 그러나 그 명성에 비해 백남준 작가가 미술사에 남긴 중요한 발자취의 의미는 의외로 잘 부각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어쩌면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라고 하는, 백남준에게 늘 따라붙는 수식어만 너무 강조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요즘 인기 있는 유튜브 채널들은 구독자 참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실시간 대화를 주고받고 그들의 의견을 수용하며 프로그램 방향을 정하는 등 서로 활발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백남준 작가가 떠오른다. 백남준은 1960~70년대 아주 일찍부터 인간을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해 주는 민주적 도구로서 전자 매스미디어의 가능성을 보여 주려고 했다. 그러나 대략 2000년 정도까지도 사람들은 TV나 매스미디어에 대해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TV는 보는 사람의 사고를 마비시키는 ‘바보상자’라는 비난, 그리고 매스미디어가 장차 인간을 지배하고 감시하는 도구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비난과 우려는 무엇보다 정보 전달의 편향성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TV와 같은 전자 매체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관객들은 거기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 채 전달되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형태였기 때문이었다.

관객 참여 유도하는 ‘비디오 아트’ 창시

요즘의 쌍방향 소통 ‘인터랙티브’ 예견

작가 탄생 90주년… 선구적 안목에 놀라

백남준은 1963년 독일 부퍼탈의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열린 ‘음악의 전시: 전자 텔레비전’이라는 전시에서 비디오 아트를 세상에 처음 내놓았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첫 시작부터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전시에서 백남준은 방송국의 일방향적인 정보 전달 방식을 뒤집고 관객의 참여로 작품이 완성되는 상호작용적 예술(interactive art)로서 비디오 아트를 선보였다. 설치된 11대의 TV들은 모두 당시 서독에 하나밖에 없었던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똑같은 프로그램을 송출하고 있었지만, 백남준이 TV 내부의 회로들을 전부 다른 방식으로 조작해 둔 상태였기 때문에 각각의 TV에 나타나는 영상은 모두 달랐다. 이러한 백남준의 작업은 방송국의 일방적인 송출에 개입해 그 흐름을 저지하고 공격함으로써 단일한 정보를 다양한 결과물로 변형시킨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 전시에는 연결된 마이크를 통해 관람자가 소리를 전달하면 그 크기와 고저에 반응하면서 변형되는 화면 이미지를 보여 주는 TV들도 등장했다. 최근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아트’의 원조이다. 여기서 백남준은 TV가 악기처럼 작동하도록 만들었고 관객이 직접 그 악기를 연주할 수 있게 유도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백남준은 자석이나 마이크 등을 활용한 관람자 참여 TV를 만들었다. 그는 1971년에는 “지난 10년간 나의 TV 작업은 관객의 참여를 위한 노력으로 일관되어 있다”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다.

백남준이 작품에 본질적이고 중요한 요소로 관객을 끌어들이게 된 것은 존 케이지의 영향을 받은 ‘행위 음악’에서부터였다. 사실 백남준은 일본과 독일에서 미술사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애초에 그의 예술 활동은 음악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1956년 쇤베르크의 아방가르드 음악을 배우기 위해 독일에 갔으며, 독일에서 2년 정도 음악을 공부한 후 1958년 쾰른에 있는 서독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며 전자음악 설비를 접하면서 예술과 기계의 접목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한편, 백남준의 예술 활동은 저항예술 혹은 전위예술에서 출발했다. 특히 그는 독일에서 함께 활동했던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샬럿 무어만을 비롯한 플럭서스(fluxus) 그룹으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다. 플럭서스는 독일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산된 1960~70년대의 전위적 예술운동이다. 이는 기존의 전통과 제도를 부정하는 반문화, 반예술적 성격을 가지고, 예술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광범위한 분야의 예술들이 융합되는 혁명적 운동이었다. 이후 포스트모던 미술로 이어지면서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주었다. 백남준도 플락서스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행위 음악’이라는 과격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 공연은 즉흥적이고 우연적으로 발생하는 해프닝들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 큰 특징이었는데, 이러한 우연적 해프닝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관객이었다.

지금은 인터넷을 비롯한 전자 매체의 기술적 발전을 바탕으로 관객의 적극적 참여가 더욱 중요해졌고 미디어의 쌍방향 소통도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백남준 작가가 현재의 미디어 환경을 보게 된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거봐. 내 말이 맞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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