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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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젠더데스크

우리 사회 페미니즘에 관한 오해 많아
남성 혐오나 여성우월주의 주장 아냐
성별 관계없이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

인식 못해도 누구나 특권층 될 수 있어
타인의 공포·불편 공감하려 노력해야
정의와 원칙 지켜야 평등 사회 기대

2020년 11월 시작한 〈부산일보〉 젠더데스크 시스템이 어느새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초대 젠더데스크를 맡아 지금까지 활동 중인데 대한민국에 몇 명 되지 않는 젠더데스크라는 이유로 여러 번의 인터뷰를 비롯해 다양한 행사에 토론자로, 강연자로 섰다. 참석자도, 행사 성격도 다르지만 받는 질문은 대체로 비슷하다.

우선 “당신은 페미니스트인가요?”라는 물음이다. 답을 하기 전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라고 되묻게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혐오하고 늘 화가 나 있는 여자’ 혹은 ‘여성우월주의자로 남성과 대립하는 센 여자’로 잘못 알려져 있다.


그럼 페미니즘이란 무엇일까. 작가이자 평론가인 벨 훅스는 그의 저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에서 명쾌하게 페미니즘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라고 설명한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성차별을 받을 수 있고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성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할 권리가 없고, 그 어떤 조건으로도 차별받아서도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벨 훅스의 정의에 따르면, 나는 페미니스트가 맞다. 그렇게 페미니즘의 정의에 대해 공감을 나누고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답한다.

두 번째 자주 듣는 질문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는데 아직도 성평등이나 젠더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이다. 공정이 시대의 화두인데, 오히려 여성 때문에 남성이 역차별받는 불공정한 상황이 생길 때도 있다고 말한다.

얼마 전 ‘여성이 여전히 차별받고 있을까’라는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패널로 나온 젊은 남성은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가정에서 군림했고 가정을 돌보기 위해 어머니가 희생했다는 건 인정한다. 아버지 세대 남자들은 잘못이 있지만 우리 젊은 세대는 억울하다. 2022년 현재는 여성이 차별받는 것이 거의 없는 것 같다”라고 항변했다. 취준생 아들을 둔 60대 참석자는 여학생들이 워낙 학점 관리, 스펙 관리를 잘해서 아들의 취업이 더 힘든 것 같다는 자신의 사례를 말하기도 했다.

나는 이 토론회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리는 특권에 관해 이야기했다. 차별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민감하지만, 정작 자신이 누리는 특권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내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엄청난 재산을 가진 것도 아닌데 무슨 특권을 누리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 젠더의 관점에서 당신이 어떤 특권을 누리는지 몇 개의 질문을 던져본다.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안전을 걱정하는가’ ‘배달이 왔을 때 문을 열어줄까 고민한 적이 있는가’ ‘밤에 택시를 잡을 때 망설인 적이 있는가’ ‘택시를 탔을 때 집에 도착할 때까지 불안에 떨어본 적이 있는가’ ‘더 자주 웃으라는 말을 듣는가’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하는가’ ‘같은 자격을 갖추고 있는데 나의 임금이, 직급이 다른 젠더 동료보다 낮아서 속상해 본 적이 있는가’ ‘나이가 들어도 매력적으로 보여야 한다며 관리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런 문제들로 고민해 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다고 해도, 젠더 영역에선 타고난 특권을 누리고 있다. 젠더 영역뿐만 아니라 성적 취향, 인종, 연령, 지역, 능력, 사회경제적 계급, 장애 등 다양한 분야별로 특권층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모임에서 “좋아하는 이성 스타일은?”이라고 물었는데, 당사자가 “저는 동성애자인데 이성 스타일을 물어 당황스럽다”라고 답한다면 당신은 특권층으로서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 해결책은 무엇일까. 〈뷰티풀 젠더〉라는 책에선 ‘자신의 특권을 직시하고, 다른 사람의 공포나 불편함을 공감해주면 좀 더 평등한 세상이 열릴 것이다’라고 조언한다. 이 해결책은 차별에 대해서도 해당한다. 인식하지 못한 채 우리는 누군가를 차별하고 아프게 하는 말과 행동을 했을 수 있다.

다행히 사회 곳곳에서 차별적인 표현 수집하기, 가치중립적인 단어 사용하기 등 부끄러운 우리를 돌아보고 나아지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평등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 조직이 정의와 원칙에 의해 지배받는 한,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라는 말을 다시 새긴다.

젠더데스크 시스템이 혐오와 차별 문제에 대한 해답이 아닐 수 있어도, 노력의 시작임은 분명하다. 더디지만, 우리는 분명히 나아가고 있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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