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소비기한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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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이 새해부터 ‘소비기한’으로 바뀐다고 한다. 1985년 유통기한이 도입된 이후 38년 만에 식품에 표시되는 기한이 변경되는 것이다. 영업자 중심의 유통기한은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이다. 이 기한 이후로도 일정 기간 섭취가 가능하지만 소비자 대부분이 유통기한을 식품 폐기 시점으로 인식하는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식품 폐기 비용이 증가하고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소비자 사이에서는 “유통기한이 며칠 지났는데 먹어도 되나요?”라는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유통기한과 관련해서 예전에 들었던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어느 날 남편은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려던 어묵을 아내가 볶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남편은 출출하던 참에 잘됐다 싶어 어묵을 먹으며 “별일이야.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유통기한을 지키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게 "당신 주려고"라고 대답했다. 남편은 ‘나야 아무거나 먹어도 되지. 아이들이 중요하지’라고 자위하면서도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소비기한 도입은 세계적 추세에 비춰 보면 늦었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2018년 식품 표시 규정에서 유통기한을 삭제하고 소비기한 표시를 권고했다. 유럽연합(EU)은 식품의 특성에 따라 소비기한, 품질유지기한, 냉동기한을 구분해 사용한다. 일본도 오래전부터 소비기한과 상미기간(嘗味期間)을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 소비기한을 도입하는 목적은 안전하게 섭취 가능한 기한을 명확하게 알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식품 폐기량은 연간 548만t, 처리비용은 1조 960억 원에 달한다. 소비기한 도입으로 연간 수천억 원대의 식품 폐기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유통기한이 소비기한으로 바뀌면 제품에 표기되는 기간이 품목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략 17~80%까지 늘어난다고 한다. 과자의 유통기한은 45일인데 소비기한은 81일, 두부는 유통기한 17일에서 소비기한 23일, 햄은 유통기한 38일에서 소비기한 57일로 증가한다. 소비기한은 유통기한보다 섭취 기한이 길어지므로 안전하지 않고 오래된 식품을 먹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는 의견도 있다. 소비기한은 과학적 실험을 기반으로 설정되므로 걱정하지 않고 먹어도 된다고 한다. 다만 소비기한이 경과된 제품을 섭취해서는 안 된다. 소비기한이 짧은 식품은 한 번에 많은 양을 구매하지 말고, 적정량을 구매하여 섭취 기한을 넘기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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