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원칙’ 정부 대응에 화물연대 ‘백기’… 노동계 위축 ‘우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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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파업 철회 이유와 전망

엄정 대응에 조합원 이탈 속출
산별 노조들 잇단 철회도 영향

철회 후 부산항 물동량 정상화
정부 ‘노동계 죽이기’ 비판도

화물연대 파업 종료 후 첫 주말인 11일 오후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앞에서 트레일러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화물연대 파업 종료 후 첫 주말인 11일 오후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앞에서 트레일러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조합원 찬반 투표를 거쳐 장장 16일간 이어오던 총파업을 큰 성과 없이 마무리했다. 대화의 창구를 닫은 정부가 연일 ‘강경 대응’으로 나서자 조합원들은 투쟁을 지속하기에 어려움을 느꼈다. 정부가 이번 파업을 ‘법과 원칙’에 따른 승리라고 보는 가운데, 노동계는 향후 정부의 노동 탄압 기조가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정부 강경 대응…대화 없이 끝난 파업

정부는 파업 초반부터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응’ 기조를 고수하며 노조를 강하게 조여 왔다. 경찰 수사와 업무개시명령 발동,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연일 화물연대를 압박했고 이에 따라 투쟁 동력도 떨어졌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시멘트 업종에 대한 첫 업무개시명령을 내렸고 이어 지난 8일 철강·석유화학 업종에 대해 추가로 명령을 발동했다. 정부가 소통 창구를 닫고 압박 수위를 올리자 파업에서 이탈하는 조합원이 늘어났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집단운송거부 관련 집회 등 참가 인원은 출정식 대비 34% 수준인 3300명으로 계속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시멘트도 평년 동월 대비 96% 수준으로 회복하면서 업무개시명령이 물류 정상화와 노조 파업 동력을 떨어트린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정부의 강경 드라이브에 따라 노조도 마땅한 ‘출구전략’ 없이 ‘강 대 강’ 대치를 이어왔다. 이번 총파업 기간 노·정 대화는 지난달 28·30일 두 차례 대화가 전부였다. 이마저도 서로 입장 차를 확인하는데 그쳤다. 정부는 ‘선 복귀, 후 대화’ 원칙을 강조했고, 결국 교섭 없는 장기간 대치 끝에 노조가 ‘백기’를 들며 파업은 끝이 났다.

■파업 장기화에 따른 투쟁 동력 약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의 산별 노조들이 잇따른 파업 철회도 화물연대 투쟁 동력 약화에 영향을 미쳤다. 공공운수노조는 지난달 24일 화물연대 파업을 중심으로 30일 서울교통공사, 이번 달 2일 철도노조 등 파업에 들어갔으나 화물연대를 제외한 개별 노조들이 합의에 이르며 줄줄이 파업을 철회했다. 서울교통공사 노조와 철도노조 파업은 일반 시민에게 파업이 영향을 직접적으로 미칠 것을 우려해, 사 측이 한발 물러서며 노조의 입장을 대부분 수용하면서 협상을 타결했다. 민주노총이 지난 3일 총파업으로 화물연대를 지원했고, 건설노조도 연대파업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파업이 장기화되자 화물연대 내부적으로도 크게 흔들린 것으로 보인다. 기약 없는 투쟁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할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조합원들은 오랫동안 파업을 지속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총파업 종료 찬반 투표에 참여한 조합원이 전체의 13.67%에 불과한 것으로 미뤄 볼 때, 이미 파업 대오는 많이 흐트러진 상태였다. 부산본부의 한 조합원은 “파업 철회 3일 전부터 별다른 소득 없이 마무리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내부적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했다”고 전했다.

■파업 종료로 부산항은 회복세

화물연대의 파업이 종료되면서 부산항도 물동량이 늘어나는 등 항만 기능을 회복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파업이 끝난 지난 9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부산항 컨테이너 반출·입량은 2만 1527TEU로, 평시 대비 132%에 달했다. 일주일 전인 지난 2일 반출·입량이 평시 대비 84%였던 점을 고려하면 항만 기능이 회복세에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전국 12개 주요 항만 전체를 보았을 때도 반출·입량은 평시 대비 149%까지 올라왔다. 이는 파업 둘째 날이었던 지난달 25일 이후 최고 수치다. 일부 컨테이너 부두는 파업 기간 동안 선적 지연을 최소화하기 위해 컨테이너를 미리 반입할 수 있는 기간을 없앴으나, 파업이 종료되자 다시 반입 제한일을 적용하는 등 일상으로 복귀하는 모양새다. 파업 동안 부두 간 환적화물이 이동할 수 있도록 열어 두었던 부두 내부 도로인 ITT 통행도 다시 중단할 예정이다.

업계는 이번 파업이 6월 파업에 비해 배나 길게 이어졌지만 피해는 예상보다는 적은 것으로 평가한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물동량이 줄어들면서 항만의 물량 자체가 적어 부산항의 장치율이 안정적으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파업 이후…노동계 “노동 탄압” 우려

정부와 여당이 안전운임제 ‘원점 재검토’ 입장을 고수하면서,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3년 연장’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당초 정부가 제안한 안보다 논의가 후퇴한 상황에서, 화물연대가 일몰제 폐지와 함께 요구한 ‘품목 확대’가 논의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노동계는 파업을 바라보는 정부·여당의 시각과 강경 대응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화물연대 파업에서 보여 준 정부의 대응 방식이 향후 다른 노조와의 갈등에서도 비슷하게 연출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부산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의 강경 대응에 대해 아쉬움이 크다. 대화가 우선돼야 하고 설득 시도가 있어야 했다”며 “이번 사태로 노동계가 움츠러들 가능성은 있겠으나, 그럴 필요도 없고 그렇게 돼서도 안 될 일”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 박문석 위원장도 “생존권이 걸려 있는 문제고 정부의 협박이 무시할 수 없는 중압감으로 다가오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라며 화물연대의 결정을 존중했다. 이어 “투쟁을 통해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 국토위 의결’이라는 성과를 얻어냈지만, 3년이 지나면 또 이런 문제가 발생할 텐데 ‘그때는 또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정부의 ‘노동계 죽이기’ 기조가 계속된다면 노동 운동도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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