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해양 세계의 상상력을 옹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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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지난 주말 해운대 달맞이 언덕 추리문학관에서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문학관 개관 30주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다섯 시간에 걸쳐서 펼쳐졌다. 전국을 아울러 문학관이 전혀 없던 시절에 사비를 출연하여 세웠으니 헌신적이고 선각자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관장인 김성종 작가가 한국 현대 추리 문학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해운대 달맞이 언덕에서 발신하는 문학적 의의가 매우 크다. 그만큼 추리문학관이 지역사회가 함께 유지하고 가꾸어 가야 할 중요한 문화자산임에 틀림이 없다.

말이 나온 김에 단지 선구적인 건축물을 두고 말하기보다 추리문학이 우리가 사는 부산과 연계되는 지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추리문학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현대의 과학 정신에 기초한다. 범죄의 원인을 규명하고 사건을 추론하는 과정이 근대성의 한 양상이라 하겠다. 여기에다 김성종 추리소설의 서사적 스케일이 더해지는데 해운대 혹은 부산에서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세계로 그 무대가 이월하고 귀환하며 변환한다. 적어도 이러한 창작 방법을 자극하고 추동한 데 부산의 특이성이 어느 정도 관여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해항도시(seaport city) 부산이 작가의 상상력을 열린 전망으로 이끌지 않았나 한다. 월러스 J 니콜스도 해양이 주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푸른 정신(blue mind)'이라고 한 바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작가 또한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의 자유로운 몽상이 창작의 동력이 되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개관 30주년 맞은 추리문학관

해항도시, 작가 상상력 이끌어

해양문학 부산 고유의 특징

개항 150년 부산항 평전 나와야

서울 중심의 일극 체제에 맞서

대양 향한 개방 정신 길러야

우리 부산의 문화를 통어하는 근저에 해양 근대성(maritime modernity)이 자리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앞서 말한 추리문학의 근대성을 포함하여 다양한 모더니티가 포진하고 있다.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에 유학하고 돌아온 요산 김정한과 향파 이주홍이 전개한 리얼리즘이 있다면 영도 출신 김소운이 전개한 한·일 간의 문학번역이라는 매우 근대적인 활동이 또한 자리한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제국의 바다에 갇힌 한국이 대양(ocean)으로 나아가는 전환을 이루면서 해역 세계의 전망을 확보한다. 주지하듯이 한국전쟁에서 부산항의 존재가 지닌 의미는 지대하다. 해항 네트워크가 UN과 세계를 접속한다. 이러한 가운데 피란지의 실존적이고 자기 반영적인 모더니즘이 크게 활성화한다. 일본이 빠져나가고 미국이 들어온 병참기지 부산의 시장과 거리는 가난과 기만, 우울과 퇴폐, 삶과 죽음이 교차하였다. 섬이 된 분단체제에서 1960년대 이후의 근대화 과정은 해양으로 가는 길과 분리되지 않는다. 상선과 원양어선이 출항하고 귀항한 장소도 부산항이다.

해방은 해양의 해방이고 근대화는 해양화라는 등식이 그 어느 지역보다 확연한 도시가 부산이다. 상선을 타고 어선에 종사한 이들이 써내는 해양문학의 전통도 부산만의 자산이다. 해방 전의 바다는 관부연락선이 왕래한 해협이 주무대일 뿐이다. 현해탄을 왕래한 경험이 시가 되고 소설이 되었다. 이병주가 관부연락선을 공부하여 소설을 쓴 소이도 이 해협의 중요성 때문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에 대양적 전환(oceanic turn)이 이루어지면서 마침내 부산은 해역세계를 품게 되었다. 아시아 지중해를 지나서 태평양과 인도양과 대서양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가운데 천금성의 해양소설과 김성식의 해양시가 탄생하였다. 오늘날 상선의 대형화, 첨단화, 자동화가 이루어지면서 서사가 줄어든 반면 원양어선의 조업 과정에서 다채로운 서사가 발생하고 작품으로 생산되고 있다. 이와 같은 본격적인 해양문학(maritime literature)도 부산만의 특성이다.

부산항이 부산신항으로 이전하면서 재개발의 과정에 있으니 그 역사를 새롭게 쓴 지도 오래다. 개항 이후 150년 부산항의 생애가 궁금하다. 누군가 부산항 평전을 써 주면 좋겠다. 아울러 이를 새롭게 태어나는 북항에서 유형적 형태의 건축과 조형물로 새겨 주면 좋겠다. 그래서 여기에 오면 누구나 부산을 구체적으로 감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부산항 없는 부산을 상상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비록 동래와 기장과 낙동강 유역을 아우르는 광역도시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부산항은 부산의 속성을 집약하는 공간이다. 부산의 해양 근대성을 가능하게 한 창구이자 관문이다. 부산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이곳에 다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은 도시가 바다와 연계하고 해양 세계를 옹호하며 해역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야말로 서울 중심의 일극 체제에 맞서는 지역 회생의 강력한 벡터를 만들어 가는 첩경이다. 부산의 문화 또한 이와 같아서 항상 해양으로 열린 상상력을 그 중심에 두어야 한다. 바다로 가는 모든 강과 하천을 살려 바다와 맺는 착취적 관계를 청산하면서 대양과 세계를 지향하는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정신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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