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민 세금으로 낸 적십자비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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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시일반 사비로 내야” VS “좋은 일이니 긍정적”

울산시·구·의회, 적십자비 전달
업무추진비·의정운영비 등 활용

사진은 지난 11월 30일 경기도 수원시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에서 직원들이 12월 1일부터 시작되는 적십자회비 집중모금 기간을 앞두고 지로 용지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사진은 지난 11월 30일 경기도 수원시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에서 직원들이 12월 1일부터 시작되는 적십자회비 집중모금 기간을 앞두고 지로 용지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울산지역 자치단체와 의회가 연말이면 어김없이 적십자 특별회비를 내는데, 돈의 출처를 봤더니 업무추진비 같은 세금이었다. 공기관이 세금으로 성금을 내고 전달식을 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부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대한적십자사는 ‘세상을 밝히는 착한 마음, 적십자회비’라는 슬로건 아래 이달 1일부터 내년 3월까지 적십자 특별회비를 모금하고 있다.

이에 울산시와 5개 구·군, 시의회와 구의회 등이 잇따라 적십자 특별회비를 납부했다. 울산시는 700만 원, 시의회는 500만 원을 냈고, 구청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300만 원, 구의회도 한결같이 100만 원을 냈다. 개인 돈을 모아 적십자회비를 낸 곳은 없었다.

이들 자치단체와 의회가 낸 적십자회비는 모두 업무추진비나 의정운영공통경비 등에서 지출했다.

적십자사 울산지사는 이달 2일 울산시·울산시의회와 남구의회를 시작으로 7일 동구청·동구의회, 8일 남구청, 9일 울주군의회, 12일 울주군청과 북구청, 13일 북구의회를 마지막으로 기관장, 의장 등과 함께 성금 전달식도 열었다. 한 구의회는 전달식에서 “더욱 살기 좋은 도시가 되길 바라며 의회에서 마음을 모아 성금을 마련했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적십자회비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정성을 모아 자발적으로 내는 성금인데, 주민 세금을 이용해 납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에게는 회비 납부를 독려하면서 정작 정치인들은 세금으로 생색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역 적십자사에서 자원봉사를 한다는 모 회원은 “당연히 공공기관 단체장이나 의원들도 우리처럼 십시일반 사비로 돈을 모아 회비를 내는 줄 알았다”며 “그런데 주민 세금으로 회비를 낸다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지자체 적십자 특별회비 담당자들은 “현행법상 소외계층 지원에 업무추진비를 사용할 수 있어 법적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자치단체의 예산 쓰임새를 감시하는 의회마저 관행인 양 적십자회비를 세금으로 납부한 것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대부분 구의회 의장은 <부산일보>와 통화에서 “좋은 일에 쓰이는 만큼 긍정적으로 봐달라”고 했다. 한 의장은 “주민 정서와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구군의장협의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 보겠다”고 말했다.

적십자회비는 갑작스러운 재난·재해를 당한 이재민 구호 활동과 울산지역 내 취약계층지원, 심폐소생술을 비롯한 안전교육보급 등에 사용한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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