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의 쏘울앤더시티] 원전 마피아, 태양광 마적단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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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에너지 정책 한계 드러낸 한전법 개정
정권에 따라 원전 확대와 폐기 반복
정책 오락가락 산업 생태계 육성 차질
에너지는 이제 국가 안보와 경제 문제
원전과 재생에너지 합리적 조합 필요
미래세대 위한 백년대계 정책 준비해야

한국전력의 회사채(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한국전력공사법(한전법) 일부 개정안이 연내 통과되지 못하면 내년 초 전기요금을 올해 인상분의 3배 넘게 올려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12일 서울 시내 주택가의 전기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한국전력의 회사채(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한국전력공사법(한전법) 일부 개정안이 연내 통과되지 못하면 내년 초 전기요금을 올해 인상분의 3배 넘게 올려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12일 서울 시내 주택가의 전기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한전법 개정 논란이 뜨겁다.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기존 2배에서 5배까지 올리는 내용의 ‘한국전력공사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다. 더불어민주당이 대거 반대표를 던져 여야가 상임위에서 합의한 법안이 이례적으로 통과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늘리지 않으면 내년에는 전기 요금을 올해 인상분의 3배 이상 올려야 한다.

국회 본회의에서는 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이 “한전의 회사채 발행에 따른 이자비용은 결국 전기 요금 인상을 통해 국민이 떠안아야 한다. 회사채 돌려 막기로는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며 반대를 주도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한전 적자가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 탓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며 민주당을 비난하고 있다. 이 같은 한전법 개정 논란이 주목되는 것은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한 우리의 근시안적 에너지 정책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에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 위기로 세계 각국은 국가 경제와 안보 차원에서 에너지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정권의 부침에 따라 에너지 정책이 극단적으로 쏠린다. 과학은 없고 정치적 구호와 수치에 좌우된다. 5년마다 원전 확대와 폐기를 반복하는 동안 정책 일관성은 사라지고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산업 육성, 탄소 중립의 목표는 점점 멀어져 왔다.

원전을 녹색 에너지 반열에 올린 것은 이명박 정부다. 현대건설 대표 시절 고리1호기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진 이 대통령은 특유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 정신으로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추가 건설해 원자력 발전 비중을 59%까지 끌어올리는 원전 르네상스를 이루겠다고 했다. 그러나 깨끗하고 지속가능하고 경제적이라던 이 대통령의 원전 신화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무너졌다. 이 대통령은 원전을 앞세워 2020년까지 온실가스 30%를 감축하겠다고 호언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국제사회로부터 기후 악당이라는 오명까지 들어야 했다.

원전 위주 에너지 정책을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한 것이 문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문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 또한 초라한 결과로 끝났다. 집권 초기 4.4%이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집권 기간 7% 안팎으로 상승하는데 그쳤다.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30%까지 올리겠다고 한 약속은 허구로 드러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의 간헐성과 토지 이용의 한계 등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결과다. 국가 정책은 선한 의도만 중요한 게 아니고 선한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 목표 수치만 제시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 실행 계획은 없었다. 환경단체 구호로는 상관없지만 국정 운영에서는 안 될 일이다. 정권이 바뀌자 윤석열 정부의 국무조정실은 전력산업기반기금 운영의 위법 사례가 적발됐다며 수사 의뢰했고 검찰은 국가재정범죄 합동수사단의 1호 사건으로 문 정부 시절 태양광 비리 의혹 수사에 나섰다. 이 즈음 ‘원전 마피아’에 빗대 ‘태양광 마적단’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윤 정부의 친원전, 탈탈원전 정책 또한 일방적 폭주로 이어지고 있다. 문 정부가 멈춰 세웠던 원전을 재가동하고 폐쇄 수순을 밟던 노후 원전 10기에 대해 운영 기간 연장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안전은 뒷전으로 밀리고 안전성 평가와 주민 공청회 과정에서 마찰만 일고 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에 대한 근본적 대책 없이 기존 원전을 핵폐기장화하는 정책을 밀어붙여 원전 밀집지역 주민들의 인내를 시험한다. 원전은 미래 에너지 전환으로 가는 과정에 한시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에너지원이라는 것이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대체적 공감대다. 원전의 불가피성과 산업 생태계, 기술적 진화 등을 받아들이면서도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 에너지 전환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산업 기술 투자와 산업 생태계 조성을 동시에 진행하는 에너지 믹서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전채 발행 논란에서 보듯 에너지 전환의 핵심은 탈원전이냐 친원전이냐가 아니라 전기 요금의 탈정치화다. 정치권이 전기 요금을 정치화하면서 신산업 창출과 기술 개발을 막고 전기 절약을 끌어내지 못하는 게 진짜 에너지 위기라는 말이다.

문 정부 시절 신고리 5, 6호기 사업에 대한 시민들의 공론화 과정이 있었다. 문 정부는 당시 이미 시작된 5, 6호기 사업을 중단하고 싶었지만 시민참여단은 숙의 과정을 통해 건설 재개를 지지하면서 동시에 향후 원전을 축소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정치인의 선동보다 시민들의 숙의를 통한 합리적 결과 도출이 훨씬 과학적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미래 세대를 위해 정권에 따라 휘둘리지 않을 백년대계의 에너지 정책이 필요한 때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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