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89>토막 난 통닭이라니!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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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팀장

알고 보면 ‘수육’은 ‘한국말 쓰는 사람들(말무리·언중)의 승리’라고 할 만한 말이다. 일단, 예전 국어사전에는 어떻게 실렸는지 보자.

*수육(-肉): 삶아 익힌 쇠고기.

그랬다. ‘숙육(熟肉)’에서 변한 말인 수육은 ‘쇠고기’에만 썼던 것. 하지만 사람들이 ‘돼지수육, 오리수육, 닭수육, 염소수육’처럼 익힌 고기는 죄다 수육이라고 불러 버릇하자 국립국어원이 그만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 뜻풀이를 이렇게 바꾼 것.

*수육(수肉): 삶아 내어 물기를 뺀 고기.

하긴, 돼지고기만 해도 ‘삼겹살수육, 목살수육, 오겹살수육’으로 세분해서까지 부르는 판에 ‘아니, 저기…. 수육은 쇠고기만 가리킨다니까!’ 하고 막아서 봤자 말이 먹힐 리가 없는 판이라 한 선택이었다.

비슷하게 ‘승리’한 말로는 ‘소면’도 있다. 예전 국어사전에 실린 소면 뜻풀이를 보자.

* 소면(素麵): 고기붙이를 넣지 않은 국수.

‘고기붙이’는 ‘식용할 수 있는 각종 동물의 고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인데, ‘육류’와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까 소면은 ‘국수이기는 하되, 육류가 들어가지 않은 국수’를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 국수의 굵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었다는 얘기다.(정작 ‘면발이 가는 국수’는 세면(細麵)이다.) 한데, 하도 많은 사람이 가는 국수를 소면이라고들 불러 대니 그만 국립국어원이 표준사전 뜻풀이를 이렇게 바꾸고 말았다.

* 소면(素麵): ①고기붙이를 넣지 않은 국수. ②밀가루로 만든 가늘고 긴 국수. 또는 그것을 삶은 음식.(소면 한 봉지./매콤한 낙지볶음에 소면을 곁들였다.)

사전이 사람들의 입에 굴복한 모양새이기는 하지만, 알고 보면 이게 바로 말이 바뀌기도 한다는 걸 고스란히 보여 주는 풍경이다. 한창 바뀌는 말로는 이런 것도 있다.

*양념통닭: 튀긴 닭고기에 고추장, 마늘, 설탕 따위를 넣어 버무린 요리.

개방형 국어사전인 〈우리말샘〉에 실린 뜻풀이인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양념통닭’이 아니라 ‘통닭’이 바로 바뀌고 있는 말이다. 왜 그런지 잘 모르시겠다면, 다시 표준사전을 보자.

*통닭: 털을 뜯고 내장만 뺀 채 토막을 내지 아니하고 통째로 익힌 닭고기.

이처럼, 토막을 내지 않고 통째로 익힌 고기가 ‘통닭’이지만, 양념통닭은 대체로 토막을 내어 튀긴 뒤 양념에 버무린 것을 가리킨다. ‘통닭’이 의미 확장을 하는 중인 것.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통닭이 ‘통’닭임을 기억은 하실 것.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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