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심 넘어… 여성·민중 미시사까지 품은 우리 역사서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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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와 신비로운 이야기/최희수·이문영·이상호

‘몽골제국 부상’ 세계사 전환기에 등장
최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향가·가야·해외 교섭 상황까지 기록

〈삼국유사와 신비로운 이야기〉는 얼마 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삼국유사〉의 세계사적 가치를 널리 공유하자는 책이다. 인물 사전, 영괴 사전, 세계기록유산을 각각 열쇠말로 하는 2개 장과 부록으로 구성돼 있다.

〈삼국유사〉는 어떤 세계사적 가치를 인정받아서 세계기록유산이 됐을까. 동아시아에서 세계사적인 전환과 함께 〈삼국유사〉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몽골제국의 부상은 세계사적 충격이었다. 그전까지 동아시아 세계의 단일 중심인 중국 체제가 붕괴된 것이었다. 물론 금나라에 의해 송이 남쪽으로 밀려난 경우도 있었으나, 중원을 완전히 복속시킨 몽골제국의 탄생은 그보다 더한 근본적인 충격이었다.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역사가 가능하다는 새 지평을 열었던 것이다.


요컨대 동아시아 세계에서 몽골의 침입을 맞닥뜨린 나라들에서 그 새 지평이 열린다. 3차에 걸친 몽골 침입을 스스로 힘으로 물리친 베트남에서는 〈대월사기〉라는 베트남 역사책을 편찬하기에 이른다. 일본의 경우, 여몽연합군의 침입을 물리쳤다는 ‘신풍 의식’이 근대 이후까지 줄곧 대단한 역사의식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우리의 경우,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가 중국 중심을 넘어선 우리 역사의 새 지평을 열었던 역사서라는 것이다. 그 이전, 통일신라시대에도 고구려·백제 유민 의식이 잔존했고, 고려에 들어서도 그 의식은 여전히 남아있던 터였다. 이제 몽골의 세계사적 충격, 고려의 위기를 통해 중국과 구별되는 ‘단일한 고려’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나갔다는 것이다. 이점을 인정 받아 〈삼국유사〉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삼국유사〉는 많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말의 원형을 담고 있는 향가도 있고, 금관가야를 비롯한 가야에 대한 기록도 있고, 고대 한반도의 다양한 해외 교섭 상황을 알 수 있고, 나아가 고려 말의 시대 상황 속에서 여성과 일반 민중 중심의 미시사 서술까지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런 가치들을 널리 공유해나가자는 것이 이 책의 첫째 의도이다.

책의 내용은 훨씬 더 풍부하다. 1장 인물사전의 얘기들은 흥미진진하다. 탁월한 능력의 인물, 뛰어난 지략의 인물,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들, 모사로 주군을 도운 인물들, 2인자와 패배자 등등 〈삼국유사〉의 수많은 인물들을 흥미로운 관점으로 새로 꿰서 펼쳐놓았다.

2장 영괴사전에서 ‘영괴’는 신령스럽고 괴이한 존재들이다. 곰 호랑이 말 용 뱀의 다양한 전승과 설화를 비롯해 개와 여우의 시간, 산신과 여신, 부림을 받는 신이한 존재의 얘기가 펼쳐진다. 한 예를 보면 단군신화, 백제 ‘웅진’에 나오는 곰은 미련퉁이가 아니다. 불국사를 지은 김대성 설화에도 등장하는 곰은 변화의 상징이라고 한다. 곰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사람과 교접해 아이를 낳기도 하고, 용맹한 사람을 의미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새로운 생명을 가져오는 변화의 존재였다는 것이다.

상상력의 보고이자 우리 역사의식의 한 분수령을 이뤘던 〈삼국유사〉는 끊임없이 읽어야 할 책이다. 최희수·이문영·이상호 지음/바오/312쪽/1만 5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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