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국민소득 4만 달러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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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100억 달러, 국민소득 1만 달러 달성.’ 이 구호가 국가적 과제가 된 적이 있었다. 수출 100억 달러와 일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서면 우리나라의 국가 위상과 국민의 삶이 예전과는 달라질 것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절대 빈곤 상황에서 출발했으니, 일단은 그 고비를 넘는 일이 중요했다. 그렇게 해서 수출은 1977년 100억 달러를 달성했고, 또 일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는 18년 뒤인 1995년 이뤄졌다.

일상의 삶은 어느새 예전보다 훨씬 풍족해졌다. 1953년 국민소득 67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1만 달러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1만 달러는 2만 달러에 비해서는 초라했고, 또 2만 달러는 다음 단계인 3만 달러를 자연스럽게 선망하게 했다. 국민소득을 숫자로 계량화해 목표로 정하는 이상 이러한 단선적인 위계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현재 3만 4000달러 안팎인 일인당 국민소득을 임기 마지막 해인 2027년까지 4만 달러로 올리겠다고 19일 밝혔다. 정부가 국민의 살림살이를 낫게 해 주겠다는데 마다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단순히 늘어난다는 것만으로 이를 무조건 반기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

소득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부류의 얘기가 아니다. 두 요인이 꼭 비례 관계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그 이상으로 반비례 관계라고 할 수는 더욱 없을 것이다. 언뜻 예전엔 가난한 나라의 행복지수가 더 높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엔 인터넷의 보급으로 다른 나라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국민소득과 행복지수가 비례하는 양상을 띤다고 한다.

한 나라의 국민소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자기 소득이 과거 어느 시점보다 느는 것은 좋은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보다 그 폭이 작다면 절대 금액이 늘었음에도 행복감보다는 실망감을 느낄 것은 불문가지다.

정부의 4만 달러 소득 정책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내 몫은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는 게 국민이다. 갈수록 심화하는 개인 소득 양극화와 지역 간 소득 격차를 해소할 대책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다수 국민은 숫자로만 표시되는 소득 증대에 시큰둥할 것이다. 또 치솟는 생활 물가 역시 늘어나는 소득을 빛 좋은 개살구로 만든다. 소득 증대라는 목표는 이제 단순히 숫자상의 지표가 아니라 국민 삶의 갈등 요소를 포괄해야 하는 복합 문제가 됐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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