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98. 흑연의 향연, 김은주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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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1965~)는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여자대학교(현 신라대학교) 미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도 부산에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2021년 김은주 작가의 작품이 부산시립미술관기획전에 출품되고 그 해 작품 한 점이 수집됐다. 부산시립미술관은 김은주 작가의 작품을 총 4점 소장하고 있다.

김은주 작가의 작업은 종이, 벽지 그리고 연필과 크레용으로 첫선을 보였다. 작가에게 자신과 타인을 연결하는 기표는 인체였다. 눈과 손이 반사 반응에 가까울 만큼 직관적으로 대상을 포착하는 인체드로잉은 미술가들 사이에서도 까다롭게 여겨진다.

신체를 통해 살아 있는 존재의 깊은 내면과 특성을 소환하는 작업은 사회적 격동과 맞물려 있고, 인간을 이해하려는 시도의 출발선이었다. 느슨함을 허락하지 않는 급격한 곡선, 컴퍼스처럼 꼿꼿하게 서 있는 신체 형상을 수많은 선의 변이와 변형의 찰나를 맞은 격동의 순간과도 같다.

1997년도 이후 작가에게 역동적 힘과 운동은 마음으로 내화되기 시작했다. 2002년의 작업에서 몸에 대한 작가의 깊이는 힘을 연결하는 운동, 그러한 운동이 자유로운 미정형의 방향을 띄었다.

그의 작품에서 화면 안으로 들어선 유기적 질서는 기막힐 정도의 구조적 배치를 선사한다. 몸통은 언제라도 구르고 말릴 듯, 포개지고 엎어져 마치 자궁 속 아이의 몸짓이 뛰노는 유동적 공간이 된다. 이런 작업을 거쳐 작가는 선 긋기를 완벽하게 체화했다. 김은주 작가에게 공간은 무의식의 장소가 되었고, 선긋기 행위는 명상과 수행의 의미로 자리를 잡았다.

가늘고 깨끗한 선 드로잉을 위해 만들어진 흑연심은 작가에게 선을 그리는 차원을 넘어 색 차원으로 이동한다. 종이결에 빼곡하게 박히다 못해 곱게 부서진 흑연 가루는 작가의 힘에 의해 종이와 하나가 된다. 흑연 가루가 박힌 무른 종이결에 가해지는 지속적인 선의 압력은 미세한 굴곡을 만든다. 칠해진 면적의 방향과 굴곡을 따라 흑연 가루들은 조명에 따라 빛 산란을 일으킨다. 이 산란은 관람객에게 마치 잠자리 날개를 볼 때 일어나는 빛 착란을 만든다.

부산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 중 1997년 작 ‘무제’는 인체상 연작 중 작가 자신의 화력이 일정 궤도에 올라섰음을 보여 주는 드로잉 작업이다. 커다란 규모와 힘을 느끼게 하는 빠른 연필선은 작가의 역량을 보여준다. 연필선의 속도감과 순간을 포착하는 작가의 시각이 맞물려 내적 갈등과 외적인 압력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으로 현재도 작가는 작품으로 자신을 마주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우경화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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