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닮은꼴’ 베트남 2500년 역사를 한눈에 보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처음 읽는 베트남사/오민영

1010년 탕롱에 도읍한 리 왕조 타이또가 건설한 ‘탕롱 황성’. 15세기 명의 지배를 물리친 레 왕조의 황제 레러이는 ‘탕롱’을 ‘동낀’으로 개명하고 다시 레 왕조의 수도로 삼아 황성으로 돌아왔다. 2010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휴머니스트출판그룹 제공 1010년 탕롱에 도읍한 리 왕조 타이또가 건설한 ‘탕롱 황성’. 15세기 명의 지배를 물리친 레 왕조의 황제 레러이는 ‘탕롱’을 ‘동낀’으로 개명하고 다시 레 왕조의 수도로 삼아 황성으로 돌아왔다. 2010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휴머니스트출판그룹 제공

유교 문화권서 중국 제국 영향

식민 지배·분단의 역사 경험

한자 사용하고 대승 불교 수용


외래 문명 끊임없는 도전 불구

자주성 바탕 독자적 역사·문화 탄생


코로나19 이후 한국 관광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여행지, 중국을 대체할 글로벌 생산 기지, 프랑스·미국·중국 등 강대국들과의 연이은 전쟁에서 끝내 승리를 쟁취한 나라, 한국에서 다문화 가정을 이룬 이민자 수가 두 번째로 많은 나라. 모두 베트남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한국과 밀접한 관계였다. 13세기 무렵 고려로 이주해 새로운 성씨를 개창한 베트남 사람들이 있었다. 20세기 초 베트남 지식인 판보이쩌우가 쓴 <월남망국사>는 한국의 민족 운동에 영향을 주었고, 베트남 전쟁 기간에는 한국과 베트남은 총부리를 맞대기도 했다.

두 나라는 공통점도 꽤 많다. 같은 유교 문화권에서 중국 제국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식민 지배와 분단의 역사를 경험했고, 오랫동안 한자를 사용하고 대승 불교를 받아들였다.

1992년 국교 수립 이래 베트남과 한국의 교역 규모 역시 매년 늘어나고 있다. 수교 30주년을 맞은 2022년 현재 한국에 베트남은 제3위 수출 대상국이자 제7위 수입 대상국이다. 2021년 기준 베트남에 한국은 제3위 수출 대상국이자 제2위 수입 대상국이다.


통일궁은 1868년 프랑스가 사이공 중심부에 식민지 총독 관저로 지은 건물이다. 베트남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고 난 뒤 한동안 ‘독립궁’이라 불렸고, 1975년 남북통일을 계기로 지금 이름인 ‘통일궁’으로 바뀌었다. 휴머니스트출판그룹 제공 통일궁은 1868년 프랑스가 사이공 중심부에 식민지 총독 관저로 지은 건물이다. 베트남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고 난 뒤 한동안 ‘독립궁’이라 불렸고, 1975년 남북통일을 계기로 지금 이름인 ‘통일궁’으로 바뀌었다. 휴머니스트출판그룹 제공

<처음 읽는 베트남사>는 베트남의 2500년 통사를 온전히 소개하는 국내 최초의 대중 역사서이다. ‘혁명의 심장’ 하노이, ‘황제의 도시’ 후에, ‘동양의 파리’ 호찌민까지 우거진 밀림과 드넓은 삼각주, 국토를 가로지르는 강줄기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생동감 있게 길어 올렸다. 베트남은 외래 문명의 끊임없는 도전에 맞서 꿋꿋이 자주성을 지켜 내면서도 바다와 산맥을 넘어 세계와 통하며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탄생시킨 나라였다.

베트남은 동남아 국가 중에서 한자, 율령, 유교 등 중국에서 비롯한 문화유산을 가진 유일한 나라다. 이는 기원전 111년부터 서기 938년까지 중국의 지배를 받았던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1000년 넘게 중국인 통치자의 폭정에 맞서 싸우면서도 중국의 선진 문물을 익혔고, 그 과정에서 장차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실력을 쌓았다. 그 결과 10세기에 중국 내 정치 분열을 이용해 독립했다. 베트남의 건국 신화에는 ‘중국의 침략에 대한 저항’과 ‘중국 문물 수용을 통한 국가 형성’이라는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주제가 함께 반영돼 있다. 베트남 전근대사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 ‘탈중국화를 위한 중국화’는 바로 중국 지배기에 생겨났다.


<처음 읽는 베트남사> 표지 <처음 읽는 베트남사> 표지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후 베트남 북부는 70년 사이에 세 왕조가 차례로 생겼다가 사라지는 등 정치적으로 불안했다. 11세기 이런 상황을 마감하고 성립한 리 왕조는 왕위의 장자 상속 제도, 과거제도 등을 도입해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해 200년 넘게 지속했다. 13세기에 성립한 쩐 왕조는 황제 권력을 강화했다. 15세기에 잠시 베트남 북부를 장악했던 명을 몰아내고 성립한 레 왕조는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고 과거제도를 강화해 문인 관료를 적극적으로 등용했다. 이렇듯 북부에서 일어난 역대 베트남 왕조는 중국 문물을 수용해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고 송·몽골(원)·명으로 이어지는 중국 역대 왕조의 침입을 물리칠 역량을 쌓았다. 동시에 참파, 란쌍 등 주변 약소국과 소수 민족을 복속하면서 중국과 대등한 소제국을 추구했다.

베트남 중부와 남부에서 인도의 영향이 두드러졌다면, 중국과 맞닿은 북부에서는 중국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북부의 중국 문화에 대한 쏠림 현상은 기원전 2세기 이래 1000년간 중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확고해졌다. 베트남 역대 왕조는 대체로 중국의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중국의 선진 기술은 홍강 삼각주의 농업 생산력 증대에, 율령은 왕조의 중앙집권체제 강화에, 유교는 통치이념과 사회 규범 확립에 기여하면서 북부의 정치세력이 베트남 전역을 통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세기 베트남은 프랑스의 침략을 받아 국권을 상실하고 식민지로 전락했다. 독립운동 세력은 프랑스의 식민통치에 저항하면서도 서구 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 시기에 서양의 정치사상이 소개됐고, 각각의 사상을 신봉하는 다양한 독립운동 분파가 생겨났다. 그중에서도 최후의 승리를 거둔 정치 세력이 사회주의 세력이었다. 식민지 사회에서 사회 혁명과 평등에 대한 이상이 지식인뿐만 아니라 농민에게도 큰 호소력을 발휘했다. 호찌민을 비롯한 사회주의자들은 프랑스와 미국을 차례로 물리치고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했다.


하노이 오페라 극장. 프랑스인들은 베트남에 프랑스의 문화와 생활 양식을 도입했는데, 그중 하나가 오페라였다. 하노이의 오페라 극장은 파리 오페라 극장(팔레 가르니에)을 모방해 만들었다. 휴머니스트출판그룹 제공 하노이 오페라 극장. 프랑스인들은 베트남에 프랑스의 문화와 생활 양식을 도입했는데, 그중 하나가 오페라였다. 하노이의 오페라 극장은 파리 오페라 극장(팔레 가르니에)을 모방해 만들었다. 휴머니스트출판그룹 제공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은 1975년 남북 통일 이후 경제 위기를 경험하면서 과감하게 자본주의 요소를 도입했고,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에 걸쳐 빠른 경제 성장을 이뤘다. 오늘날 베트남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국가가 관리하는 시장 경제’를 표방하면서 ‘평등과 자유의 조화로운 추구’라는, 아직 어떤 국가도 완벽하게 성공하지 못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이처럼 베트남 역사는 ‘꺼지지 않는 저항의 불꽃’처럼 강렬하다. 그 이미지에서 묘하게 닮은 한국의 역사가 어른거린다. 오민영 지음/휴머니스트출판그룹/480쪽/2만 4000원.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