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세상의 모든 열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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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 소설가

수능이 끝난 지 한 달이 조금 더 지났다. 그 사이 수능 성적이 발표되고 대입 전형이 진행되고 있다. 수능 성적표가 나오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만점자에 대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만점 비결부터 시작해서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지원했는지, 초중고 시절은 어떠했는지, 사교육은 어느 정도 받았으며 스트레스 관리는 어떻게 했는지, 심지어는 부모의 직업까지 인터뷰 기사에 모두 나와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대학 입시란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해 더 배우기 위하여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것’을 넘어서 훨씬 복잡하고 거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그러한 매스컴의 호들갑과 대중의 관심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비록 만점자가 아니라 해도 수능을 친 학생들에 대해 어른들은 평소보다 관대하고 포용적이다. 그동안 시간을 쪼개 쓰고 잠을 줄여 가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보아왔기 때문에, 또 앞으로 그들이 살아갈 세상은 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짧은 시간만큼이라도 실컷 놀고 쉬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베푼다. 놀이공원이나 외식업체, 여행?레저 시설 같은 곳에서는 수험표를 가지고 오면 할인해주는 이벤트도 한창이다.

나 또한 고3 수험생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공부를 아주 잘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치열하고 힘들게 그 시기를 보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동안 고생했던 아이들에게 어깨를 토닥이며 지금 이 시간을 마음껏 누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수능과 대학 입시에서 소외된 아이들이 마음에 걸린다. 수험표 지참 할인 이벤트 같은 것을 볼 때 마냥 훈훈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전문계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몇 년을 일했었는데, 그곳에서는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하는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이유는 다양했다. 단순히 공부에 대한 재능이나 의지가 없어서인 경우도 있었지만, 진로 결정에 대한 명확한 줏대를 가진 아이들도 있었고, 가정 형편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경우도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국어를 가르치던 내게, 취업 지원 서류로 낼 자기소개서를 봐달라고 가져왔다. 시작과 마무리가 매우 어설펐으며 문장은 비문투성이였지만, 그래도 진솔하고 절실했다. 나는 아이들이 써온 자기소개서를 보고 몰래 조금 울기도 했다. 순탄치 않은 성장 과정을 서툰 문장으로 가감 없이 나열해놓고 “선생님, 틀린 글자 없어요?”라며 말똥말똥한 눈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던 그 아이들에게는, 평범한 고3 수험 생활도, 수능이 끝난 겨울의 해방감도, 수험생에 대한 세상의 관대함도 누릴 기회가 없었다.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한 아이일수록 빠르게 취업이 되어 2학기에는 이미 듬성듬성 빈자리가 보였다. 자기소개서에 조손가정임을 밝히며, ‘귀사에 취업하게 되면 열심히 돈을 벌어 할머니께 효도하고 싶다’고 썼던 아이는 한 대기업의 반도체 생산직 노동자가 되어 먼 도시로 떠났고 졸업식에도 오지 못했다. 그래도 그 아이는 자기가 원하던 기업체에 취직이 되어 기쁘게 떠났지만, 어떤 아이들은 취업이 잘 되지 않아 불안정한 아르바이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했다. 여러 이유로 일찌감치 학교를 떠난 채 소속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삶의 형태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다수가 걷는 길로 가지 않는 것은 자신의 선택일 수도 있고,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일 수도 있다. 밤을 새워 공부를 했든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밤샘 작업을 했든 혹은 위태롭게 흔들리며 밤거리를 쏘다녔든, 세상의 모든 열아홉들은 치열하게 자신의 마지막 청소년기를 살아냈을 것이다. 그러니 수험생이 아니었던 아이들의 어깨도 따뜻하게 토닥여주는 어른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수고했다고, 우리가 책임지고 지켜주지 못한 세상에 너희 스스로의 힘으로 버티고 존재해준 것만으로도 그저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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