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치고 달리기] 대담한 발걸음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스포츠라이프부 기자

한국 축구가 강해졌다. 12년 만에 이룬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성과는 값지다. 성적만큼이나 훌륭한 성과는 또 있다. 4년 넘게 갈고닦은 ‘한국 축구’가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은 것이다. ‘한국 축구’에 대한 믿음, 4년 뒤 2026 월드컵을 넘어 꾸준히 이어 가야 할 한국 축구 대표팀의 자산이 됐다.

‘한국 축구’는 4년 4개월 동안 정성 들여 빚은 도자기와 같다. 파울루 벤투 감독의 축구 철학이 반영된 전술·전략 위에 선수단의 피와 땀이 더해졌다. 실패도 있었고, 위기도 있었다. 그때마다 선수단과 코치진은 ‘우리는 제대로 가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극복했다. 선수단은 월드컵 16강전에서 브라질에 진 뒤 벤투 감독 등 코치진과의 이별에 아쉬움과 슬픔을 드러냈다.

‘한국 축구’의 위기는 정작 카타르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찾아왔다. 벤투 감독의 후임을 정하는 문제를 둘러싼 잡음이 일었다. 일부 언론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추측성 기사들이 쏟아졌다. ‘국내파·연봉 10억 원·국가대표 출신 축구 해설가….’ 국내 축구 팬과 국민들은 분노했다. 벤투 감독과 선수단이 이룬 성과에 대한 평가가 내려지기도 전에 후임 감독의 기준이 언급되는 것에 실망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나온 뒤 ‘후임 감독 논의는 진행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미 불은 번진 상태였다.

월드컵 16강을 이끈 선수들도 섣부른 후임 감독 논의에 불만을 드러냈다. 주전 수비수인 A 선수는 ‘감독 결정에 있어 선수의 입장을 귀담아들어 달라’고 밝혔다. 주전 미드필더 B 선수는 ‘우리의 감독님을 너무 쉽게 선택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 번이라도 더 고심하지 않을까’라며 현 상황에 대한 복잡한 속내를 밝혔다.

대표팀 선수들이 감독 선임 논의에 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선수들의 입장 표명은 선수들과 대한축구협회 사이에 한국 축구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는 증거다. 선수들로서는 감독·코치진과의 신뢰의 중요성을 체감한 상황인 만큼 설익은 후임 감독 논의가 납득하기 어렵다. 팬들 역시 이런 논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차기 감독 선임을 결정할 대한축구협회는 대담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여론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대한축구협회는 카타르 월드컵을 통해 확인한 선수단과 코치진 간의 신뢰를 이어 갈 감독을 찾아야 한다. ‘한국 축구’가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뚝심을 밀어붙일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 무엇보다 선수들에게 자부심과 자신감을 불어넣을 감독이 필요하다. 그렇게 ‘한국 축구’는 다시 한번 성장해야 한다.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