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권의 핵인싸] 융합과 분열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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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오랜만에 눈길을 걸었다. 뽀드득 발끝에 뭉쳐지는 눈 덩어리와 호젓한 눈바람이 모처럼의 고향 냄새로 코끝에 와닿았다.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는 폭설과 한파의 와중에 수도권 본가에 다녀온 덕분이다.

정반대로 보이는 핵의 융합과 분열

질량 차이 면에선 본질적으로 같아

일상에서도 적절한 균형감 필요해

눈 풍경의 낭만을 깨뜨리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손바닥에 내려앉으면 어느새 녹아 없어지는 이 연약하고 얇은 눈송이는, 나노미터 크기의 물 분자들이 온도와 습도에 따라 얼어 굳으면서 최적화된 육각형의 결정구조를 이룬 것이다. 전자 뭉치인 원자들이 합쳐진 분자는 우리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들의 결정체다. 눈을 뭉쳐 본 적이 있으면 누구나 알겠지만, 눈송이들을 뭉쳐서 주먹 크기만 한 눈 덩어리로 동그랗게 만드는 것과 이미 뭉쳐진 몇 개의 눈 덩어리를 합치는 일은 많이 다르다. 눈 덩어리 몇 개를 붙여 놓은 것처럼, 전자 뭉치인 원자들이 합쳐진 분자는 규칙적이지만 울룩불룩한 모양이다. 뭉쳐진 원자의 개수에 따라 꺾쇠, 사면체, 피라미드 등 다양한 모양이 되고, 거대한 나선 구조의 사슬이 되기도 한다. 한 산소 원자의 양쪽에 비스듬히 수소 원자가 뭉쳐진 꺾쇠 모양의 투명한 물 분자들이지만, 크리스털 결정들로 제각각 얼어붙으면 난반사를 일으켜 하얀 눈꽃 세상을 만든다.

색깔이나 단단함 같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거의 모든 현상들은 전자들 때문이지만, 원자의 중심에서 이 전자들을 전기력으로 붙들고 있는 핵은 원자의 질량과 전기적 중성에만 기여할 뿐 사실상 우리의 일상에서 직접적으로는 경험할 수 없다. 눈가루처럼 떨어져 나가거나 들러붙기 일쑤인 전자 뭉치에 가려져 있고, 원자 크기의 십만 분의 일에 불과한 핵력의 범위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전자들끼리의 전기적 반발력만 느낄 수 있다. 전자를 하나씩 모두 떼어 낸다(원자를 최대로 이온화시킨다) 해도, 양전하를 띤 핵들은 서로 전기적으로 반발해 밀쳐 낸다. 하지만 온도가 수천만 도까지 올라가면, 핵들의 운동이 엄청나게 활발해져서 핵력이 작용할 정도로 가깝게 되고, 마침내 전기적인 반발력을 넘어 핵융합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초고온 상태에서 수소와 같이 가벼운 핵들이 합쳐져 무거운 핵으로 변하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내놓는데, 이를 핵융합 에너지라고 한다. 중력으로 뭉친 우주의 먼지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별의 탄생 원리이며, 지금도 태양 중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원자력 발전에 이용되는 우라늄과 플루토늄같이 무거운 핵이 쪼개지는 핵분열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에너지 효율이 훨씬 높고 방사성 폐기물이 나오지 않아서 꿈의 청정에너지라고 부르는 ‘인공 태양’의 원리도 바로 이것이다.

핵융합과 핵분열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융합 또는 분열 전후에 반드시 질량 차이가 난다는 면에서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이다.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 핵이 합쳐지면서(쪼개지면서) 분명히 전체적인 개수는 그대로인데도, 어떻게 합쳐져(쪼개져) 있느냐에 따라 미세한 질량 차이가 발생한다. 수소 핵융합의 산물인 헬륨 핵의 질량은, 융합 전 수소 핵들의 질량을 합친 것보다 작다. 분열하기 전 우라늄 핵의 질량은, 분열 후 생긴 핵들의 질량을 합친 것보다 크다. 즉, 융합이나 분열 이후에는 항상 질량이 줄어든다. 사라진 질량(결손 질량)은,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에너지-질량 등가원리(E=MC2)에 따라, 그만큼의 에너지로 발산된다. 결손 질량이 발생하는 방향으로 융합이냐 분열이냐가 결정되고, 또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발산되는 에너지가 달라진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철(Fe)보다 가벼운 핵들은 핵융합을 통해서 상당히 큰 결손 질량이 생기고, 철보다 무거운 핵들은 핵분열을 통해서 약간의 결손 질량이 생긴다. 핵융합이 핵분열보다 에너지효율이 훨씬 큰 이유다. 수소의 융합으로 탄생한 별들은, 최초 질량에 따라 진화의 정도가 차이는 있지만, 무거운 핵종으로 핵융합을 거듭하여 결국 최종적으로는 철에서 끝난다. 또한 철보다 가벼운 원소들은 별의 진화를 통해 만들어졌을 것이라 추정되는 반면, 철보다 무거운 핵종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성된 것인지, 여전히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최근 미국의 연구진이 190여 개의 레이저를 이용한 핵융합을 통해서, 투입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양의 에너지 생산을 최초로 성공시켰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자기장을 이용한 토카막과는 방법이나 규모가 크게 다르지만, 놀랄 만한 쾌거다.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의 수가 40%를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까지 서구식 개인주의를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과연 우리 삶의 최적화를 지향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1회 용품처럼 에너지 과소비만 부추기며 공동체가 사라진 인간의 위기만 가속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적절한 융합과 분열의 미학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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