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결국 알은 깨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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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환(1965~ )

진통이 막 시작된 산모처럼 바다가 복부를 움켜쥐고 심하게 몸을 비튼다 그리고 핏덩이의 알을 낳는다 바다 위를 굴러다니는 저 알이 위태위태해 보인다

(중략)

발가락이 힘차게 뻗어나간다 몇 평의 영토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오토바이를 배달시킨 짜장면이 두 채의 아파트를 맛있게 비벼 먹는다

바다는 날마다 알을 하나씩 낳는다 산적 같은 태풍이 불어오고 나는 알을 잡으려 바다에 몸을 던진다 성적 비관으로 아파트 베란다에서 몸을 던진 어린 꽃잎처럼

그 순간에도 깨진 알에서 나온 것들이 온 하늘을 뒤덮고 있음을 분명히 보았다

- 웹진 〈같이 가는 기분〉(2022 겨울호) 중에서


26년 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필명으로 당선되었다가 사라진 시인의 신작 시를 마주했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시인의 시 제목처럼 ‘결국 알은 깨지는 것’. 긴 생애의 한 자락에서 문득 시인은 다시 알이 깨지는 듯한 자신의 시심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아마 아침 바다에서 알(해)을 낳는 바다를 목도했을 듯싶다. 아침 해가 떠오른 바닷가 동네에 ‘오토바이를 배달시킨 짜장면이 두 채의 아파트를 맛있게 비벼 먹는’ 풍경의 한 컷을 펼쳐놓고 투신의 슬픔 속에서도 무심히 깨진 알(해)에서 나온 것들이 ‘온 하늘을 뒤덮고 있는’ 것을 본다. 분명하게 보려는 것이 시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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