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따라 중국에서 온 나 1년 만에 투명인간 됐어요” [이방인이 된 아이들]

손희문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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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따라 한국 온 중도입국 아동
탈북·국제결혼 등으로 급증 추세
국내 출생 다문화 가정과 달리
낯선 언어·문화에 적응 어려워
나홀로 집에 무대책 방치 일쑤

부산 영도구 바울지역아동센터에 중도입국 아동들의 신발이 놓여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부산 영도구 바울지역아동센터에 중도입국 아동들의 신발이 놓여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1년 전 영도의 크리스마스는 참 따뜻했어요.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이는 주택가 주황색, 흰색 불빛이 꽁꽁 언 마음을 녹였죠. 무엇보다 여기선 더 이상 엄마와 떨어져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어요. 중국에서 살 때 엄마가 돈을 벌어 오겠다며 먼저 한국에 갔었거든요. 1년 만에 집에 온 엄마는 여덟 살인 저를 데리고 라오스, 태국을 돌아 영도에 도착했어요. 그날 편의점에서 흘러나온 “징글벨~ 징글벨~” 노래를 흥얼거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런데 다시 찾아온 영도의 겨울은 왜 이렇게 추운 걸까요. 몸은 따뜻한데, 마음을 데워 주던 난로가 꺼진 것 같아요. 중국에서는 그래도 할머니와 친구들이 있었는데, 여기는 엄마도 친구도 없는 것 같아요. 제 아빠는 중국인, 엄마는 ‘북한이탈주민’이래요. “중국어 한 번 해 줘” “어느 나라에서 왔는데?”라며 호기심 갖던 학교 친구들은 하나둘 사라졌어요. 더듬거리는 한국어가 답답한지, 쉬는 시간에도 이제는 말을 걸지 않아요. 어울리고 싶어 학교를 마치고 한두 시간 운동장에 있는 친구들 곁을 뱅뱅 돌거나 바로 옆에서 혼자 공놀이도 해 봤어요. 친구들에겐 내가 떠도는 유령처럼, 보이지 않나 봐요. 방학 때 같이 축구도 하고, 동전노래방도 가고, 생일파티도 가고 싶은데….

밤마다 영상통화에서 엄마는 친구들에게 계속 말을 걸어 보라지만, 그럴 용기가 생기지 않아요. 어색한 한국어에 아이들이 수군대고 낄낄댈 거 같아서….

하루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다가와서 저에게 “짱깨” “또××”라고 했어요. 선생님이 친구들을 바로 혼내셨지만,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어요. 다음 날 화가 나서 “너도 또××”라고 얘기했더니, 아이들은 오히려 재밌어하면서 제 흉내를 내고 놀려댔어요. 이젠 외로워도 마음 안 맞는 친구들과 억지로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유일한 친구는 남아 있어요. ‘롤’(PC 게임)이에요. 집에서 롤을 하면서 중국 친구들과 헤드셋으로 대화를 나누면 금방 기분이 좋아져요. 아마 ‘한국 친구’들이 PC방에서 제 롤 실력을 보면 깜짝 놀랄 거예요.

오늘도 집에는 아무도 없어요. 엄마는 2~3일에 한 번씩 집에 오세요. 일주일 동안 안 오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옆집 할아버지와 형이 같이 놀아줬어요. 엄마는 오실 때마다 선물을 사 오셔서 정말 기다려져요. 엄마는 회사일이 바빠져서 제가 아동센터에 갈 수도 있다고 했어요. 저처럼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온 친구들이랑 같이 맛있는 밥도 먹고 놀 수도 있는 곳이래요. 엄마랑 떨어지기는 싫지만 그래도 이제는 가고 싶어요. 그동안 한국어 연습도 많이 해서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고 싶어요.

사람들은 저를 ‘중도입국 청소년’이래요. 그런데 그게 뭔지, 저도 제가 누구인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엄마는 분명히 제가 한국인이라고 했는데, 동네 할머니는 저더러 중국인이래요. 선생님은 저를 ‘다문화 청소년’이라고 불러요. 저는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가요? 맘 놓고 ‘우리나라’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있긴 한 걸까요? 저는 대체 누구인가요?


이 기사는 올 8월 바울지역아동센터 임겸채 교감이 상담한 중도입국 아동·청소년 중 북한이탈주민 자녀 사례에 근거해 1인칭 시점으로 작성했습니다.


손희문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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