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99. 전후 민중의 참혹한 현실, 강홍윤 ‘생존(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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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윤 '생존(모자)'.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강홍윤 '생존(모자)'.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전남 진도 출생인 강홍윤(1936~)은 195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1961년까지 춘천사범학교 미술 교사로 재직하다, 군 제대 후 1964년 대한조선공사에 근무하면서 부산에 정착했다. 1974년 뇌혈전증으로 3여 년간의 투병 휴직 시기를 거쳐 1985년까지 대한조선공사에서 일하며 작업과 생업을 병행했다.

작가는 1983년 창립한 부산창작미술회의 회원으로 활동했고, 부산여자대학·동의대 등에서 강사로도 활동했다. 2016년에는 부산 1세대 화가인 송혜수의 작가 정신 계승과 지역 미술발전을 위해 제정된 송혜수미술상을 수상했다.

강홍윤의 초기 작품에 해당하는 ‘생존(모자)’는 미술대학 재학 시절인 1958년에 제작한 목판화이다. 한국전쟁 이후 물자가 부족했던 시기에 정규수업 시간에도 마음 놓고 미술 재료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작가는 그에 대한 돌파구로서 판화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작가는 상대적으로 주변에서 접하기 쉬웠던 목판화의 예리한 칼맛으로 표현되는 형상에 매료돼 몇 날을 지새우며 작업했다고 술회했다.

강홍윤은 당시 자신이 접한 해외 전후 추상미술, 초현실주의 경향의 작품과 그 속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재료적 특성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유화에 반해 주류가 아니었던 판화 매체를 선택하는데 용기를 얻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목판화로 표현가능한 형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했던 것이다.

‘생존(모자)’는 머리에는 소쿠리를 이고 품에는 젖먹이를 안고, 잠시 앉은 행상하는 여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깡마른 몸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골격과 표정 없이 헝클어진 얼굴을 통해 여인이 처한 가난의 고통을 잘 전달한다.

가난은 행상과 돌봄으로 표현된 생계와 생존의 경계에 있고, 고통은 이를 감당해야 하는 모진 현실 속에 위태롭게 놓여 있다. 미술평론가 김이순은 1950년대 회화, 판화, 조각에 자주 등장하는 이러한 모자상의 이미지가 전쟁 전후 양육과 경제활동을 동시에 수행하는 강인한 어머니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집착, 그리고 희망이 반영된 현상으로 주목하며, 이 작품을 언급한 바 있다.

한국전쟁 이후 초토화된 도시를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지만, 수많은 사람이 가족을 잃거나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으로는 수많은 전쟁고아가 생겨났으며 해외 입양이 본격화된 것도 이때이다. 강홍윤은 이 시기 제작한 판화 연작에 대해 “전후 폐허의 풍경과 처절한 생존의 현실을 표현”했다고 회고했다. 이 작품과 더불어 작가의 초기 판화는 구체적인 인물이 처한 상황을 통해 전후 민중에게 맞닥뜨려진 참혹한 현실을 거칠고 날카로운 목판의 특성과 흑백의 대비로 표현했다.

부산시립미술관은 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소장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던 1997년 소장품 구입 첫 해에 ‘생존(모자)’와 50년대 판화 3점, 1960~70년대 유화, 수채화 등 강홍윤의 작품 6점을 소장했다. 2008년 ‘전쟁의 상처 C’(1958년)를 구입해 ‘전쟁의 상처’ 연작(부제-A,B,C)을 갖추었다. 2016년에는 작가로부터 1958년에 제작된 판화작품 10점을 기증받아 ‘생존’ 연작(부제-외침, 울부짖음, 표정)과 함께 ‘우는 소년(전쟁고아)’, ‘전쟁 미망인’, ‘폐허의 성터’, ‘명상’, ‘가족’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강선주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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