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장벽에 멀어지는 미래… 사례·연령별 맞춤 지원을 [이방인이 된 아이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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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이 된 아이들] <하> 손 놓은 부산, 대안은

48.3% “한국어 못 해 스트레스”
학습·진로 문제 등 악순환 이어져
교사 부족해 제도권 교육도 구멍
중도입국 사례별 ‘밀착형 교육’
촘촘한 지원·전담기구 마련해야

부산지역 중도입국 아동·청소년들이 지난해 12월 영도구 영선동 바울지역아동센터에서 사물놀이를 배우고 있다. 바울지역아동센터 제공 부산지역 중도입국 아동·청소년들이 지난해 12월 영도구 영선동 바울지역아동센터에서 사물놀이를 배우고 있다. 바울지역아동센터 제공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은 한국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 자녀와 다르다. 국내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 아이는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고, 한글을 모국어로 배우는 등 태어날 때부터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진다. 반면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은 부모를 따라 비자발적으로 한국에 들어온 경우가 많아 낯선 언어와 문화에 혼란을 겪는다. 관리 주체인 여성가족부와 교육부는 초기 언어 교육 등 정착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지만 급증하는 아이들을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각 기관의 중구난방식 지원으로 정책 효율성도 떨어져 이를 전담할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언어 장벽’에 진로·미래 불투명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은 한국어 능력이 모자라 학습, 진로, 생활 등에서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입국 후 대안학교나 대학교 언어교육원,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에서 한국어 교육을 지원받지만 교육 기간이 평균 1년 안팎에 불과하다. 이후 공교육에 편입되더라도 수학, 과학, 역사 등 다른 과목의 진도를 따라가기엔 언어 장벽이 너무 높다. 같은 학년 아이들과 나이 차가 커질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사전 언어 교육을 2년 이상 받기도 쉽지 않다.

몽골 출신 중도입국자 A(26) 씨는 “1년 정도는 마음을 굳게 먹고 공부해야 한국어 의사소통이 원활해진다”며 “중·고교 교과 과정을 소화하고 입시를 치르려면 정규 수업 외에도 최소 3년 정도는 한국어를 집중해서 공부해야 한다”고 전했다.

2018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국내 거주 중국 출신 중도입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주 배경 청소년의 실태 및 지원 방안 연구’에 따르면, ‘한국어를 잘 못 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48.3%(매우 그렇다 17.2%, 그런 편이다 31.1%)에 달했다.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 23.7%(전혀 그렇지 않다 10.6%, 그렇지 않은 편이다 13.1%)의 배를 웃돈다. 최악의 경우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이 한국어 능력 부족으로 학교를 중도 이탈해 ‘학교 밖 청소년’으로 전락해 사회 문제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언어 문제는 다른 과목 학습 부진과 진로·진학의 어려움의 악순환도 일으킨다. 지난해 두 기관이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한·중 청소년 생활 실태 및 가치관 비교 연구’에 따르면 한국 거주 중도입국 중국 청소년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진로 문제(29.6%)였다. 이어 한국어 실력(14.3%), 돈 문제(13.3%), 건강 문제(12.2%) 순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진행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배상률 전문위원은 “중도입국 아동·청소년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중국 출신 아이들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제도권 내 한국어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특히 부산은 몽골, 파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언어를 할 수 있는 교사가 부족해 해당 국가 출신 아이들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사례 제각각…맞춤형 대책 절실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은 초등학교 입학 전인 아동기부터 10대 중·후반까지 다양한 연령기에 한국에 들어온다. 한국어 수준, 출신 국가도 천차만별이어서 사례별 맞춤형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부 정책은 국내 다문화가정 청소년에만 초점을 맞춘다. 부산시를 비롯한 대다수 지자체도 기존에 다문화가정 청소년을 대상으로 해 오던 멘토링이나 학습 지원 사업 외에 새로 추진하는 정책은 없다. 부산시교육청도 징검다리 과정, 수학 역량 강화 프로그램 등 교육부 계획에 따른 지원 외에 별도의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금정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한국어 수준이 각기 다른 아이들을 한꺼번에 교육하는 등 중도입국 아이들을 위한 맞춤형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이중언어·다문화언어 강사를 늘리고 이들의 수업 시간도 확대해 밀착형 교육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중도입국 통합 학급 개설, EBS 다국어 서비스 제공, 중도입국 아동·청소년 사업 추진 지자체·기업 지원 등의 정책적 대안도 제시한다. 다문화아동청소년연구원 송원일 교수는 “중도입국 청소년이 스스로 노력하도록 여성가족부의 적응 지원 사업인 ‘레인보우스쿨’ 등에 참여할 때 체류 기간을 연장해 주거나 영주권·국적 취득 시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 관리체계 구축해야

전문가들은 더불어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이 겪는 복합적인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중앙부처와 지자체, 시교육청 간 협력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부처별 정책이 유기적으로 짜여지지 않아 예산·시간 낭비가 크고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분석이 근거다. 실제 여성가족부, 법무부, 교육부 모두 내용이 엇비슷한 한국어 교육을 지원한다. 불필요한 중복 지원을 없애고 재원을 효율적으로 쓴다면 가족 회복, 입시 지원 등 다양한 분야의 지원도 가능해진다.

송 교수는“현재의 지원 체계를 촘촘하게 하고, 현실을 반영한 다른 과제들도 적극적으로 발굴하기 위해서는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을 전담할 컨트롤 타워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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