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골 깊은 정치 불신, 중·대선거구제서 돌파구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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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검토 필요” 의견 밝혀
이해득실 따져 발목 잡지 말아야

김진표 국회의장이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2023년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표 국회의장이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2023년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대선거구제가 새해 벽두 우리 정치권의 시급한 화두로 부상했다. 화두를 던진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2일 공개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 검토가 필요하다”며 “지역별로 2∼4명 선출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김진표 국회의장도 늦어도 올 3월 중순까지는 선거구제 개편을 포함한 선거법 개정을 완료하자고 국회에 주문했다. 총선을 1년여 앞두고 행정부와 입법부의 두 수장이 나란히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언급한 것이다. 우리 정치권의 해묵은 과제이나 논의에 진척이 없던 중·대선거구제가 가시권에 들어올 수 있을지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1개 선거구에서 1명만 당선시키는 현행 소선거구제는 우리 사회에 깊이 자리 잡은 정치 불신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 왔다. 승자독식 구조라서 중소 정당이나 신생 정당의 제도권 진입이 거의 불가능했고, 정치적 갈등을 조정할 완충지대 역시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거대 정당의 독선과 몽니, 억지가 판을 쳐도 제어할 수 없는 막장 정치의 형국이 펼쳐진 것이다. 다수당이 의석수를 내세워 소수의견을 짓밟는 등 정치 생태계의 건전성과 다양성에도 해악을 끼쳤다. 무엇보다 다수 사표(死票) 발생으로 민의가 정치구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소선거구제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게 중·대선거구제다. 효과는 실제 선거 현장에서 이미 증명된 바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달 30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제8회 동시지방선거 당시 일부 기초의원 선거구에서 중·대선거구제가 시범 실시됐다. 그 결과 호남과 영남에서 각각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외에도 소수정당 후보가 다수 당선됐다. 특히 영남에선 민주당 후보가 지역별로 11~44%의 당선율을 보였다. 비록 군소정당의 난립으로 정국의 혼란을 야기할 소지가 있다고는 해도, 소수 정당의 진입과 우리 정치의 고질인 지역구도를 깨트리는 데 중·대선거구제가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고 하겠다.

여야 일부 정치인들이 광주와 대구에서 승자독식 정치구도를 극복하자며 토론회를 여는 등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긍정적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일이 촉박하다. 총선 1년 전인 올 4월까지 선거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대 정당의 그늘 아래 기득권을 누리던 현직 의원들을 이 기간 안에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의 퇴행을 막고 선진화를 이루기 위한 정치개혁을 더 이상 미루어선 안 된다. 여야 없이 조속히 논의를 이어 가고 대승적 차원에서 중·대선거구제를 수용하는 게 옳다. 의원들은 이해득실을 따져 발목을 잡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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