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골 깊은 정치 불신, 중·대선거구제서 돌파구 찾자
윤 대통령, “검토 필요” 의견 밝혀
이해득실 따져 발목 잡지 말아야
중·대선거구제가 새해 벽두 우리 정치권의 시급한 화두로 부상했다. 화두를 던진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2일 공개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 검토가 필요하다”며 “지역별로 2∼4명 선출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김진표 국회의장도 늦어도 올 3월 중순까지는 선거구제 개편을 포함한 선거법 개정을 완료하자고 국회에 주문했다. 총선을 1년여 앞두고 행정부와 입법부의 두 수장이 나란히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언급한 것이다. 우리 정치권의 해묵은 과제이나 논의에 진척이 없던 중·대선거구제가 가시권에 들어올 수 있을지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1개 선거구에서 1명만 당선시키는 현행 소선거구제는 우리 사회에 깊이 자리 잡은 정치 불신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 왔다. 승자독식 구조라서 중소 정당이나 신생 정당의 제도권 진입이 거의 불가능했고, 정치적 갈등을 조정할 완충지대 역시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거대 정당의 독선과 몽니, 억지가 판을 쳐도 제어할 수 없는 막장 정치의 형국이 펼쳐진 것이다. 다수당이 의석수를 내세워 소수의견을 짓밟는 등 정치 생태계의 건전성과 다양성에도 해악을 끼쳤다. 무엇보다 다수 사표(死票) 발생으로 민의가 정치구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소선거구제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게 중·대선거구제다. 효과는 실제 선거 현장에서 이미 증명된 바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달 30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제8회 동시지방선거 당시 일부 기초의원 선거구에서 중·대선거구제가 시범 실시됐다. 그 결과 호남과 영남에서 각각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외에도 소수정당 후보가 다수 당선됐다. 특히 영남에선 민주당 후보가 지역별로 11~44%의 당선율을 보였다. 비록 군소정당의 난립으로 정국의 혼란을 야기할 소지가 있다고는 해도, 소수 정당의 진입과 우리 정치의 고질인 지역구도를 깨트리는 데 중·대선거구제가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고 하겠다.
여야 일부 정치인들이 광주와 대구에서 승자독식 정치구도를 극복하자며 토론회를 여는 등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긍정적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일이 촉박하다. 총선 1년 전인 올 4월까지 선거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대 정당의 그늘 아래 기득권을 누리던 현직 의원들을 이 기간 안에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의 퇴행을 막고 선진화를 이루기 위한 정치개혁을 더 이상 미루어선 안 된다. 여야 없이 조속히 논의를 이어 가고 대승적 차원에서 중·대선거구제를 수용하는 게 옳다. 의원들은 이해득실을 따져 발목을 잡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