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뷰 선실’ 랜선 집들이, 참치로 마사지하는 ‘구독자 10만’ 항해사 [덕업일치 성공기]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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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산업 김현무 항해사·유튜버
낭만·현실 공존 원양어선 알리려
고된 일상 유쾌하게 영상에 담아
경험 쌓아 리더십 갖춘 선장 꿈


어창에 가득 쌓인 참치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현무 항해사. 김현무 항해사 제공 어창에 가득 쌓인 참치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현무 항해사. 김현무 항해사 제공

'원양어선'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거친 고성이 오가는 갑판, 갑판을 집어삼키는 집채만 한 파도, 어두운 선실에 있는 선원들을 생각하기 쉽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탁 트인 태평양이 바로 보이는 선실에서 인터넷도 하고, 운반선으로 가족이 보낸 택배도 받으며, 외국인 선원들과 요리도 해서 나눠먹는 소소한 일상도 존재한다.

이러한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담는 청년이 있다. 바로 사조산업 소속 태평양 참치 선망선 패밀리아호의 김현무(29) 1등 항해사다. 최근 그는 tvN 인기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원양어선을 타는 '드문' 청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김 항해사에게는 한 가지 직업이 더 있다. 바로 구독자 10만 명을 돌파한 인기 유튜브 채널 'RAMP(램프)'를 운영하는 '유튜버'다.

김 항해사가 올리는 영상 속 어선에서의 일상은 무섭고 위험천만해보이기보다 유쾌하고 사람 냄새가 난다. 외국인 선원들과 서로 머리를 잘라주거나, 선내에서 닭을 기르는가 하면 갓 잡아 펄떡펄떡 뛰는 참치를 안마기로 사용하는 등 어선 내 소소한 일상은 원양어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 버린다. 지금도 원양어선을 타고 있는 김 항해사와의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됐다.


잡은 참치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현무 항해사와 동료선원. 김현무 항해사 제공 잡은 참치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현무 항해사와 동료선원. 김현무 항해사 제공

전남 완도군 출신인 김 항해사는 고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거의 평생을 바다와 함께 했다. 완도수산고와 부경대를 거쳐 원양어선을 타 올해로 항해사 7년 차가 됐다. 바다와 평생을 함께 해 온 그에게도 원양어선은 두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직접 원양어선을 탔던 선배들로부터 원양어선 내 실제 생활을 직접 들으면서 넓고 거친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 올리는 일이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김 항해사는 "학창시절에는 원양어선보다는 비교적 안전하고 육체적 노동이 덜한 상선항해사를 꿈꾸기도 했다"며 "하지만 학교를 다니고 여러 수업을 들으면서 원양어선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그가 영상을 찍어봐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원양어선 정보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김 항해사는 "원양어선에 대한 자료가 매우 한정돼 있었고, 후배들을 위해 좋은 정보가 될 만한 영상을 제작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실제 항해사를 꿈꾸는 이들이 '어떻게 항해사가 되나요', '월급은 어떻게 되나요', '배에서 아프면 어떡하나요' 등 댓글로 많은 질문을 하기도 한다.

'선실 공개' 영상은 그의 채널에서 가장 조회수가 높다. 넓은 실내에 대형 텔레비전, 와이파이 장비 등 각종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모습에 사람들은 '예상 밖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김 항해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원양어선의 이미지와는 달라 더욱 관심을 가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채널이 왜 인기가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현무 항해사의 길게 기른 머리카락을 동료 선원이 잘라주는 모습. 자른 머리는 소아암 환자를 위해 기부했다. 김현무 항해사 제공 김현무 항해사의 길게 기른 머리카락을 동료 선원이 잘라주는 모습. 자른 머리는 소아암 환자를 위해 기부했다. 김현무 항해사 제공
선원들은 쉬는 시간에 다이빙을 즐기기도 한다. 김현무 항해사 제공 선원들은 쉬는 시간에 다이빙을 즐기기도 한다. 김현무 항해사 제공

외국인 선원과 3개 국어를 섞어가면서 소통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는 한국어, 영어, 인도네시아어를 섞어 대화하는데, 이 언어를 선원끼리는 '태평어'라고 부른다. 그는 "한국 국적의 선박에 승선하는 외국인 선원은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환경 속에서 조금이나마 외국 선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소통하다 보니 친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김 항해사가 3등 항해사 시절부터 함께한 인도네시아인 동료 '로얀'은 그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다. 1970년생으로 쉰이 훌쩍 넘은 로얀은 배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김 항해사와 로얀은 친구처럼 지낸다.


김현무 항해사 모습. 김현무 항해사 제공 김현무 항해사 모습. 김현무 항해사 제공

재밌고 소소한 일상들도 있지만, 원양어선에서 일하는 것은 여전히 고되다. 오전 일찍 일어나 어군을 하루종일 탐색하고, 일몰 직전에 투망을 할 때에는 어둠 속에서 그물 아래로 온갖 핏물과 잔해물들이 쏟아지는 것을 맞으며 작업을 해야 한다. 그물이 찢어지는 경우 잡았던 수십 t의 참치를 놓치는 일도 있다. 가족들도 만날 수 없고, 또래처럼 연애도 평범하게 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돈을 번다고 해도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김 항해사는 "하루하루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매일 오전 일찍 일어나 예측할 수 없는 기상상황과 싸워가며 참치 수십 t을 잡는 일은 힘들다"며 "무엇보다 1~2년의 어기 동안 배 안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리더십을 갖춘 선장이 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김 항해사는 "경험을 바탕으로 배라고 하는 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잘 이끌어가는 선장이 되고 싶다"며 "앞으로도 어선 내 여러 일상들을 영상으로 담아 보겠다"고 전했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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