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개발제한구역과 지속 가능한 도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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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잊을 만하면 다시 붙들려 나온다. 도시 쇠퇴의 원죄인 양 매도당하고 당장이라도 무릎이 꿇려질 태세다. 제도화된 지 벌써 5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대도시권에선 끊임없이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새로 바뀐 지자체장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를 해제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듯 행동한다. 제도의 긍정적인 면을 잘 아는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관련 위원회에 참가하는 이들조차 지역의 해제 요구를 적극 대변한다. 바로 개발제한구역 해제에 대한 얘기다.

최근 안팎에서 그린벨트 해제 요구

외곽 지역 난개발, 근본 성찰 필요

후속 세대 위해 환경 측면도 고려를

무분별한 도시 외곽의 개발 행위를 제한하기 위해 설치한 일명 ‘그린벨트(GB)’로 불리는 개발제한구역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달 부산, 울산, 경남의 지자체장들은 모처럼 합심하여 국토부 장관에게 개발제한구역 해제 권한을 지방정부로 넘겨 달라고 요구했다. 사실상 개발제한구역 전면 해제를 요구한 것이다. 그동안 이 제도는 국가가 강제로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반시장적·사회공학적인 정책이라는 단점과 급속한 성장에 따른 환경 훼손, 난개발 억제라는 장점이 공존하는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제도를 도입한 주체는 보수 세력인 박정희 정부였던 반면, 가장 많이 해제한 시기는 진보 진영인 김대중 정부 때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개발제한구역 제도의 도입과 해제는 이데올로기적 접근을 띨 수도 있으나, 이를 떠나 도시계획 제도의 역사성 및 도시 성장과 관련해 합리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1938년 그린벨트법(Green Belt Act)을 제정한 영국 제도를 본받아 우리나라는 1971년 도시계획법을 개정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 1971~1977년까지 국토의 5.4%에 해당하는 5397.1㎢가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됐다. 영국은 2019년 기준 국토의 12%에 해당하는 1만 6158㎢를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해 놓았다.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호주 등 대부분의 선진국도 명칭은 달라도, 이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개발제한구역 해제의 근거인 ‘이미 훼손된 자연환경’은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논리다. 실제로 가장 중요한 개발제한구역의 역할은 도시 개발의 평면적 확산을 방지하는 것이다. 개발이 어려운 산지를 제외한 평탄한 지역(농지 등)의 개발제한구역 해제는 무분별한 도시 개발 확산(urban sprawl)으로 이어져 막대한 사회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외곽 개발과 이로 인한 교통량 급증은 경관과 녹지 훼손, 초미세 먼지 증가 등으로 이어진다. 모두 현대의 가장 큰 도시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개발제한구역이 도시 확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는 반론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듯이 개발제한구역을 넘어 난개발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현대 도시계획은 도심을 좀 더 매력적으로 재활성화해 외곽으로 나가려는 수요를 억제하는 ‘뉴어바니즘(New Urbanism)’ 등의 계획 패러다임을 활용하고 있다.

부산시는 2001년 이후 7개 대도시권에 각각 부여되었던 개발제한구역 해제 용량인 66.21㎢(2000만 평) 중 98%가량을 소진해 추가로 1000만 평 해제를 원하고 있다. 전국의 다른 권역(68.3%)이나 수도권(79.2%)에 비해 소진율이 높다는 점은 개발 압력이 높거나 개발 계획이 빨리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외곽 지역 개발로 과연 국토균형발전과 도시의 질적 성장에 이바지하였는지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개발 이후 부울경의 개발제한구역 권역인 부산권, 울산권, 창원권 내 핵심 거점 경쟁력 상실, 도심 인구 감소, 지역경제 역성장이 함께 이루어졌다는 점은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외곽의 개발제한구역 해제는 왜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있어야 한다. 미국 서부 오리건주의 포틀랜드시는 여기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포틀랜드시는 미국식 개발제한구역 제도인 ‘도시성장 경계(urban growth boundary)’를 운영하는 도시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이 도시는 외곽 개발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친환경적·계획적 명품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다. 도시성장 경계 내부의 도심에는 대중교통과 공원, 혁신 기업들이 어우러져 청년층의 유입이 특히 많다.

얼마 전 가족과 함께 ‘아바타: 물의 길’이라는 영화를 관람했다. 로봇, 드론 등 첨단 과학기술로 중무장한 지구인들의 무자비한 위협에 맞서 자연과 교감하고 사는 외계 행성인 판도라인들의 저항을 그린 영화다. 극단적 편 가름이지만, 개발과 환경으로 크게 갈라진 현실을 풍자한 것으로도 보였다. 좀 더 환경을 고려하는 지속 가능한 도시 성장을 바라본다. 미래 지구인들, 그중에서도 부산의 후속 세대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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