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인사이트] 계묘년에 배워야 할 토끼의 지혜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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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영특함과 기지, 다산과 풍요 상징
약육강식 세계의 최고 생존 전략
두 마리 토끼 한 번에 쫓는 용기
도망용 굴 3개 파는 방비책 절실
재주만 믿고 교만하면 실패 반복
진영 아닌 국민 통합의 정치 해야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을 찾은 학생들이 토끼 조형물과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을 찾은 학생들이 토끼 조형물과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호랑이의 해가 가고 ‘검은 토끼의 해’(癸卯年)가 밝았다. 귀를 쫑긋쫑긋 세우는 앙증맞은 모습의 토끼는 속담, 동요, 설화 등에 자주 등장하는 친숙한 동물이다. 힘센 호랑이로부터 목숨을 구하는 ‘꼬리가 얼어붙은 호랑이’ 설화에서부터 거북의 꾐에 빠져 용궁에서 간이 뽑혀 죽을 위기에 처했으나 기지를 발휘해 탈출하는 판소리 ‘수궁가’까지 권력자와 양반 아래 신음하던 민중의 한을 풀어 주는 단골 소재였다. 토끼는 한 번에 4~8마리의 새끼를 낳는 강한 번식력 때문에 다산과 번성, 풍요를 상징하는 상서로운 동물로 십이지신(十二支神)이기도 하다.

2022년 엄혹한 코로나 시기에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라는 말만 믿고 산 것처럼, 2023년 계묘년에는 어린 시절부터 익숙한 토끼와 관련한 고사성어와 속담에서 살아갈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인간은 동물에 빗댄 삶의 많은 경험과 철학을 선대로부터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각 개인과 기업, 도시 부산과 대한민국 등 모든 주체가 토끼로부터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심오한 전략을 배우기를 희망한다.

무엇보다 ‘현명한 토끼는 살아남기 위해 숨을 수 있는 굴을 셋이나 판다’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의 지혜가 절실하다. 토끼들은 평균 1.5m 길이의 굴을 파는데 유사시에 대비해 비상구와 다른 굴과의 통로도 만든다고 한다. 초식동물로 먹이 사슬의 제일 아래인 토끼는 호랑이, 삵, 독수리, 매, 부엉이까지 사방이 천적이다. 안전과 방어는 당연한 생존 전략이다. 오죽했으면 ‘토낀다’는 말이 도망치는 토끼의 동사형일까. 새해는 저성장-고물가 복합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서민과 소상공인, 기업까지 각자도생 경쟁에 내몰리면서, 경제적 약자들에게는 생존 전략이 절실하다. 영끌 사태로 대변되는 코인과 주가, 주택 가격 급락을 비롯해 급등한 금리와 대출 제한, 베이비부머들의 은퇴와 구조조정 등 개인에게 들이닥친 위기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 기업, 도시, 국가 모두가 스스로의 안위를 지킬 수 있는 생존 전략과 포트폴리오를 촘촘하게 짜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으면 두 마리 다 놓친다’는 속담도 새겨들어야 한다. 인생을 돌이켜 보면 돈과 명예, 일과 사랑처럼 동시에 성취하기 힘든 두 가지 목표를 욕심을 부려 쫓아다니느라, 하나도 제대로 못 건진 경우가 허다하다. 부산은 2030월드엑스포 유치와 가덕신공항 조기 착공이란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다. 오는 4월 파리 세계박람회기구의 부산 현지 실사에는 2029년 공항 조기 개항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매립이든 해상 플로팅이든 6년 안에 3.5km 활주로 공항 완공을 전제로 2030부산엑스포를 개최할 수 있을지 셈법이 복잡하다. 째깍거리는 시곗바늘 소리에 자칫 길을 잃고 우왕좌왕할 우려도 있다.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노력을 기울이되, 어느 순간에는 전략적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한 시나리오도 세워 둬야 한다.

정치 리스크에 대한 토끼의 경고는 너무나 심각하다. 여야 정치권은 국민 통합은 포기한 채 극단의 진영 정치에 집중하고 있다. 콘크리트 지지층만 결집하는 ‘집토끼론’과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는 ‘산토끼론’이 대표적이다. 국민 10명 중 4명은 정치 성향이 다르면 밥도 같이 먹기 싫어할 정도라고 한다. 손자병법의 ‘모든 곳을 지키면 모든 곳이 약해진다’는 글귀는 적을 이기기 위한 사생결단의 군사 전략이지 국가 통합의 철학은 아니다. 실제로 산토끼와 집토끼는 유전적으로 교배조차 힘들다고 한다. 담장을 허물고 대화하고 반목의 매듭을 풀어야 국가 공동체의 미래를 찾을 수 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로 시작하는 윤극영의 동요 ‘반달’에서처럼 달에는 ‘옥토끼’가 산다고 한다. 옥토끼는 계수나무 아래서 불로장생의 약을 만들기 위해 절구로 방아를 찧고 있는 천년을 사는 영물이다. 594만㎞를 비행해 지난해 연말 달 궤도에 안착한 한국 첫 달 탐사선 다누리가 옥토끼의 근황을 영상으로 보내고 있다. 전설의 옥토끼에게 2023년 대한민국과 부산, 우리 개인은 어떻게 생존해야 하고, 어떻게 번성해야 하는지 지혜를 물어볼 참이다.

아마도 옥토끼는 두 가지 목표를 향해 달리는 용기를 가지면서 죽음 직전에 기지로 생명을 구한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답할 듯하다. 교만하게 자신의 재주만 믿고 거북이와의 경주에서 낮잠을 자다가 시대에 뒤처지는 ‘이솝우화’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을 것이다. 언덕 위를 향해 깡충깡충 뛰어오르는 토끼처럼 국민 모두가 2023년 행복과 행운이 가득 차기를 기원한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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