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92>놀래키지는 말자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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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팀장

‘언어 능력’이라 하면 대개 어휘력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비슷하게 생긴 말을 구별하는 것도 중요한 언어 능력이라 할 만하다.

“엄한 사람 잡지 마!”

흔히 듣는 말이다. 엉뚱한 사람이나 억울한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지 말라는 말. 하지만, ‘엄한 사람’은 잡힐 사람이 아니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엄하다(嚴하다): ①규율이나 규칙을 적용하거나 예절을 가르치는 것이 매우 철저하고 바르다.(군대는 계급의 상하 구별이 엄하다….) ②어떤 일이나 행동이 잘못되지 아니하도록 주의가 철저하다.(다시는 싸움을 하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엄하게 일러두어라….) ③성격이나 행동이 철저하고 까다롭다.(학생에게 엄한 선생님….)

이러니 ‘엄한 사람’은 잡힐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잡을 사람에 속한다. ‘엄한 사람’은 ‘애먼 사람’이라야 했다. 표준사전을 보자.

*애먼: 일의 결과가 다른 데로 돌아가 억울하게 느껴지는.(애먼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다./애먼 징역을 살다….)

즉, 억울한 사람은 ‘애먼 사람’이었던 것.

“혼자 사는 연예인들 중에 재혼을 꺼려하는 이유가 괜히 엄한 사람이 내 돈 쓸까 봐 그러는 건데 얼마나 좋냐!”

어느 연예인이 한 말이라는데, 여기서 ‘엄한 사람’ 역시 잘못. 그냥 ‘엉뚱한 사람’이었다면….

〈[시승]사람 놀래킨 기아 니로 하이브리드 실연비〉

〈세계 놀래킨 김주혜 작가 “호랑이 닮은 독립군 덕분”〉

이런 기사 제목 때문에 매우 놀랐다. 언론이 이런 말을 쓰다니…. 놀라게 한 것은 ‘놀래킨’이라는 말. ‘놀래키다’라는 우리말은 없기 때문이다. 놀라지 말고, 표준사전을 보자.

*놀라다: ①뜻밖의 일이나 무서움에 가슴이 두근거리다.(고함 소리에 화들짝 놀라다….) ②뛰어나거나 신기한 것을 보고 매우 감동하다.(엄청난 규모에 놀라다….) ③어처구니가 없거나 기가 막히다.(…영어 한마디 못한다는 사실에 모두가 놀랐다….) ④(신체 부위를 나타내는 말과 함께 쓰여)평소와 다르게 심한 반응을 보이다.(…실컷 먹었더니 창자가 놀랐는지 배가 아프다.)

자, 뭐, 이런 뜻이야 다들 아실 테고, 이 ‘놀라다’의 사동사는 ‘놀래다’다. 즉, 이 ‘놀래다’만으로 놀라게 한다는 사동의 뜻이 다 표현되므로 ‘놀래키다’가 설 자리가 없는 것. 그러니 ‘사람 놀래킨/세계 놀래킨’은 ‘사람 놀랜/세계 놀랜’이라야 했다. ‘놀래킨’에 놀란 이유를 이제 아실 터. 언론의 언어 능력이 이 정도라면….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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