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여파’ 재개발·재건축 조합-건설사 ‘갑을 관계’ 역전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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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 무리한 사업 수주전 자제
곳곳서 경쟁입찰 안 돼 수의계약
조합, 공사비 인상 부담도 수용

부산 부산진구 부산시민공원 주변 촉진3구역 전경.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부산일보DB 부산 부산진구 부산시민공원 주변 촉진3구역 전경.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부산일보DB

부동산 호황기에 재개발·재건축 조합은 건설사에 ‘갑’이었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조합의 요구 조건이 까다롭더라도 일단 수주하고 사업을 진행하면 돈이 됐다. 부동산 경기가 좋아 미분양 걱정이 없었고 금리가 낮아 사업을 진행하는 데 드는 비용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1~2년 새 상황이 급변했다. 자재비와 인건비 등이 오른 상황에서 건설사들은 굳이 무리하게 수주전에 뛰어들지 않는다. 결국 몸이 달아오른 것은 조합이다. ‘갑’과 ‘을’이 바뀐 것이다


■경쟁입찰이 사라졌다

부동산 호황기에는 입지가 조금이라도 좋다면 건설사가 몰려들어 시공사 선정에서 조합이 우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단독 입찰에 따른 수의계약 수순을 밟는 곳이 대부분이다. 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1890가구 대단지로 조성되는 괴정7구역 재개발사업에는 SK에코플랜트와 현대건설 컨소시엄만 관심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괴정7구역이 수의계약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본다. 해운대구 반여3구역 재건축사업도 DL이앤씨가 단독 응찰해 지난달 12일 수주했다.

건설업계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올림픽파크 포레온)’ 청약 결과가 이러한 분위기를 키웠다고 설명한다. 서울 분양시장의 ‘최대어’로 꼽혔던 올림픽파크 포레온은 ‘10만 명 청약설’이 나올 정도로 화제가 됐다. 하지만 실제 청약 신청자는 2만 153명, 평균 경쟁률은 5.45 대 1에 불과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2000세대 정도 대단지라면 수주를 위해 현장을 면밀히 검토하고 회의도 수십 차례 진행했지만, 최근에는 회의도 거의 없을 정도로 사업 추진에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서울 최대어라고 불린 둔촌주공의 성적표를 보고 당초 수주전에 참가하기로 한 사업장도 아예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갑’ 건설사 공사비 인상 압박

부동산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자 ‘갑’이었던 조합의 위치도 확연히 달라졌다. 부산의 한 대형 재개발 단지에서는 건설사가 조합을 상대로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곳도 생겼다. ‘조합 측의 지속적이고 무리한 요구로 정상적인 사업 추진이 어렵고 현 상황이 지속되면 사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최근 보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법적 책임을 운운하는 것은 ‘사업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말과 사실상 같다”며 “경기가 좋을 때는 건설사가 조합 측과 최대한 협의하려고 했지 이 정도까지 강하게 나온 경우는 없었다”고 말했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공사비 인상을 두고 조합과 비대위의 갈등이 커지기도 한다. 건설사가 갑이 된 상황에서 ‘공사비 인상 카드’를 조합이 수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비대위가 문제 삼으며 생기는 갈등이다. 재개발 조합 한 관계자는 “공사비를 인상하더라도 사업을 빨리 추진하는 게 이익일 수 있지만, 조합원 입장에서는 부담해야 할 금액이 커지니 당연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형 재개발 현장이 을이 된 상황에서 소규모 재건축 단지의 협상력은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부산의 한 소규모 재건축 단지는 최근 건설사로부터 이주 연기 요청을 받았다. 높은 금리와 분양시장의 불확실성이 이유였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 악화로 건설업체들이 몸을 잔뜩 웅크린 상황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여 앞으로 재개발·재건축 추진에 어려움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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